대학 졸업반에 졸업작품으로 소설을 하나 썼던 일이 있었다.
그당시 소설가 박영준씨가 우리 학과장님으로 나는 그 교수님을 따라다니며
현대문학에 추천작가가 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사실에 입각한 소설을 쓰라고 했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이지만 허구속의 사실을 묘사하란다.
스물네살짜리가 묘사할수 있는 세계가 무엇일까...
고민에 빠졌다.
사랑을 주제로 소설을 구상하던중 언니가 자궁외에 임신이 되어서 산부인과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언니는 유산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첫아이를 낳은 후 둘째를 가지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병원을 쫓아다니면서 산부인과에 대한 지식을 얻어 듣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쓴 소설중에 주인공이 유산 수술을 하는 장면이 나오게 된 동기다.
정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엄청난 오해의 여지를 불러 일으키게 되는 줄을 몰랐다.
'애 떼어 봤어?'
나의 약혼자이던 지금의 남편의 말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글을 읽고 첫마디가 그랬다.
경험담이 아니고는 처녀가 이렇게 상세히 묘사할수가 있겠느냐고...
억울하기 그지없다.
나는 결백했다.
진짜다.
그는 다시는 내게 소설을 쓰지 말것을 요구했다.
소설뿐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일을 반대했다.
나는 A+학점을 받았지만 다시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유산의 경험이 있다는 오해는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아서 애먹었다.
아마도 지금도 그 오해는 풀리지 않은것 같다.
첫아이를 낳았을때 그는 다시는 그 말을 안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약속은 지켜졌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늘 그 일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그때 만약에 내가 굴하지 않고 계속 글을 썼다면 과연 소설가로서 성공을
할수 있었는지...그것은 미지수다.
유산이 아니라 살인도 소설중에는 할수 있는 일이라고 끝까지 밀어 붙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에 눈이 어두워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버릴수 있다고
생각한 그때가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잃어버린 세계가 그립고 아쉬운것은 단지 나이 탓인것 같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그립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과 이루어졌다한들 행복이 보장될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복의 한계가 있는것 같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해본다.
최선을 다하지 못함을 반성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세계만 돌아다 보는 지금의
나를 향해 그냥 한번 웃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