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스물 두살에 지금의 남편을 회사에서 만났다
둘은 사내커필로 3년여 가까이 연애를 하면서
스물다섯 되던 겨울 나는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콩 깍지가 씌이면 아무것도 안보인다던데
내가 딱 그 짝이었다
10남매의 가난한 농부의 막내 아들
지금은 스래트 집이지만 그때는 벽돌집에
아궁이에 불때는 집 이었다
울 친정은 기름 보일러 놓은 당시 였다
이쁘게 신부화장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고
그렇게 울은 하얀겨울에 경주로 신혼여행을 갔다
그 떄 까지 나는 큰 아이들이 내 안에 있는줄 몰랐다
그냥 속이 안좋고 피곤한 줄만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피로연때 마신술이랑
나이트 뒷풀이면
아찔하게 느껴진다
신혼 여행서 친정으로 돌아오던날
친정 어머니가 꿈을 꾸셨다고 하셨다
빨간 고추를 널어 말리는 꿈을
그날 나는 첨으로 입덧이라는 것을 했다
아가씨적 다듬고 멋만 내던
나는
참 어리둥절하고 암튼 맘이 그랫다
첫아이라서 뭐든 다 해주고 싶고
평소에 읽지 않던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참 열심히 태교라는 것을 했다
나와 남편의 관심속에 뱃속에서 아이는 무럭 무럭 잘 자라주었다
10달째 되던 예정일을 며칠 지난후
병원에 갔는데
아이가 조금 크다고 한다
나는 잘 먹어서 아이가 크겠지 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일주일후................
맛있게 도너스며 복숭아며 먹고 있는데
일명 진통이라는 것이 왔다
잠자리에 누운 남편을 깨워서
부랴부랴
병원에를 갔다
한 여름 장마철이라 비는 왜 그리 쏟아지는지............
그렇게 도착한 병원
황급히 달려온 의사 선생님
수술을 하자고 하신다
아이 머리가 커서 골반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일명 " 아두골판 불균형" 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무섭고 그랬다
그당시 수술하면 죽는 줄 알았으니까 말이다 ~~~
수술 실로 향할때 나란히 놓여진 신발을 보면서
나는 다짐하고
별일 없기를 다시 기도 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사이
나에게는 마취제가 투입되고
조금후 아주 건강한 사내아이
3.9키로 울 큰 아들이 태어났다
너무나 기쁘고 감격 스러운 순간이었다
남편은 후에 말하는데
수술실 밖에서 아주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큰 아이와 나와의 첫만남이 시작되고
아무런 탈없이 큰아이는 잘 자라 주었다
그리고 일년후
나는 다시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지금
셋이 되었다
초등 3학2학년 아들둘
이제막 말을 시작하는 18개월 짜리 이쁜딸
첫아이 낳고 몸조리 해주신 시어머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83에 드는 나이신데..........
어머님은 10남매를 두셨으니 얼마나 힘드셨겟어요
친정어머니 또 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늘 가까이 살지만 못난 딸인데
챙겨주시고 울 둘째 낳을때
힘들까봐
본인일 뒤로하고 큰아이 봐주신 고마운 부모님
아들아 그리고 딸아
첫째든 둘째 셋째든
엄마는 너희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것으로도
나눌수 없고 바꿀수 없단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