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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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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BY 통통맘 2004-11-10

 

“포옹”


  요즘처럼 기온이 쌀쌀하다 느껴질 때면 생각나는 한사람이 있다.

자신도 별스럽게 따뜻하지 못하게 입었으면서 어린소녀의 등이 시려울까봐 그나마 입고 있던 옷도 마저 벗어 덮어주며 안아주던 사람.

나이 40이 다 되었어도 잊지 못할 넉넉한 품이요 그림움이다.


어렸을 땐 몰랐다.

옷뜨다 남은 실로 알록달록 엮인 실장갑을 끼고도 매서운 바람과 스미는 물기에 두손을 “호호” 불라치면, 언제 오셨는지 거칠은 두손으로 젖은 실장갑을 벗겨내고, 두손에 입김을 “후우-후 ” 불어대며 양손을 비벼주시던 그분.

나의 영원한 사랑 할아버지.


어렸다는 것만 기억할 뿐 몇 살이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던 그 시절.

봄이면 봄과 함께,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나름, 겨울이면 겨울과 함께 그 따스함과 추억들이 어제일처럼 스쳐 지나간다.


  봄!

만물이 생동하고 대지가 지지개를 켜며 땅속의 새생명이 딱딱한 흙을 뚫고 나와 산골에 살다보니 지천에 널린게 이름모를 꽃이요, 들풀들이다.

그중에서도 진달래를 꺾어 품안 가득 보듬어 안고 집으로 향하던 어린소녀에겐 더없는 간식이요, 재미였다.

어린아이들에겐 꺾는 재미와 간식으로 어른들에겐 화전과 진달래술로 웃음과 재미를 주었다.


  여름!

지금처럼 물이 오염 되지도 않았고 산골짜기 여기저기에서 모여 흐르던 동네를 가르던 개울가는 빨래터이면서 아이들에게 더 할 수 없이 재미를 주던 곳이다.


시원한 그늘 돌틈에 숨은 가재며, 다슬기 그리고 구멍 뚫린 소쿠리를 개울가 풀숲에 집어 넣으면 언제나 무엇이고 걸려들던 귀여운 민물고기들.

나에겐 더 할 수 없는 할머니에게 매맞는 아픔을 잊게 했던 이끼낀 물속 돌미끄럼틀.

젖은 옷을 대충 큰바위에 널어놓고 돌위에 잡은 고기를 올려놓고 구워먹던 기억들

어느땐 지나가던 동네아저씨의 매운탕 거리로 반을 털리기도 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다.


  가을!

산골엔 주위가 온통 꽃과 들풀과 나무들 뿐이다 보니 낙엽이 쌓이는 양도 만만치 않다

수북이 쌓아 놓은 지푸라기 와 낙엽산을 동네 개구쟁이들이 그냥 지나칠리 없었다.

작은키에 맞지 않아도 뛰어내릴 곳만 있으면 어느곳이든 상관이 없었다.

풀풀 날리는 먼지도, 뿌우연 옷가지도 그 재미를 억누르진 못했다.


거기에 가을이 주는 풍성함은 우리의 배를 불리고도 남았다.

어느집이고 감나무 없는 집이 없었고 야트막한 산자락엔 곳곳에 밤나무와 도토리나무, 그리고 제법 큰 아이들의 간식거리인 칡넝쿨이 개구쟁이들의 손길을 언제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른들이 들일로 바빠도 배고픈줄 모르고 뛰어 다녔다.

한참 먹성 좋은 녀석들인지라 그리 먹고 내달리다가도 자기집 굴뚝 연기만 피어오르면 어느새 정신없이 뛰어 달려갔다.


  겨울!

평지와 다르게 산골의 겨울은 매서운 바람과 눈내리는 양이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지붕에도 마당에도 수북한 그 눈들이 개구쟁이들의 훌륭한 미끄럼틀이 되기도, 눈사람 인형이 되기도

했다.

산골의 저녁이 빨리 찾아오다 보니 호롱불에 둘러 앉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질화로 속에 고구마며, 밤은 훌륭한 저녁간식이다.


  그렇게 추억이 많았던 사계절속에 넉넉한 품을 가지고 언제나 양팔을 벌리고 계시던 덮수룩한 수염에 조금은 앙상한 주름진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그 품이 얼마나 포근했는지는 나 밖에 모를 것이다.


이 세상 포옹 중에 따스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본다.

나의 더없이 따스했던 할아버지와 손녀의 포옹 말고도, 가슴 저리거나 반대로 벅찬 사랑하는 연인의 뜨거운 포옹도 있을 것이고, 부모와 자식간에 포근한 포옹, 친구와의 결연하거나 희망에 차거나 기쁘거나 슬플 때의 포옹.


바라보는 이도 미소가 저절로 머물게 하는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이어주는 인간고리 중 하나인 포옹 속에 퐁당 잠기고 싶다.


중년의 나이를 먹고 자식들을 포옹하며, 무뚝뚝하지만 소박한 남편의 포옹 속에 가족의 울타리가 더 없이 평온하고 따스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