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곱사등이 키 작은 처녀와 순진하고 착한 총각이 있었다.
고아였던 그 순진한 총각은 이집 저집 농사일을 돌보아주며 곱사등이 처녀의 문간채에
살고 있었다.
말이 없고 성실한 그 총각을 곱사등이 처녀의 부모는 자식처럼 여기며 돌보아주었다.
그 총각을 마음에 두고 있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는 곱사등이 처녀는 자신을 생각하며
슬픔에 젖어 애만 태웠다.
총각은 애타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일만 열심히 할뿐이었다.
주말 농장 가는 길에 아담사이즈인 곱사등이 엄마와 항상 헬쭉 거리며 잘 웃는 열 서너 살
먹은 아들이 살고 있다.
내가 농장엘 갈 때면 언제나 집밖에 나와서 서성대거나 자기네 개를 데리고 나와 두 모자가
내 차가 지나가는 데도 비킬 생각을 않는다.
차에서 내려 비켜달라고 했더니 그들의 이상한 언행을 보고 비로소 난 그들이 장애우 란걸
알았다.
그 후에도 내가 주말농장엘 갈 때 마다 어김없이 그들은 그 골목에 있었고 잘 듣지 못하는
그녀지만 난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 그녀도
/밭에 오나 벼
하며 순진하게 웃어준다.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도 그녀는 잘 듣질 못한다.
아니 큰 소리로 고함을 쳐야 비로소 그녀는 내 입 모양을 보고 말 끼를 알아듣는다.
귀는 잘 들리질 않지만 말은 그런대로 의사표현이 될 정도로 잘한다.
그녀의 헬쭉이 아들은 요즘 들어 부쩍 키가 자라 지 엄마 갑절은 되지 싶다.
그 애의 아빠는 아주 진실하고 온순한 그야말로 착한 가장이다.
그렇게 성실하고 반듯하고 진실한 사람이 곱사등이이고 귀도 온전치 못한 그녀와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다.
헬쭉이 그의 아들역시 온전치가 못하다.
또래 아이들이라면 한창 중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그 애는 곱사등이 자기어미와 하루 종일
목걸이를 한 개랑 골목에서 헬쭉거리며 지낸다.
그 아이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한다.
마냥 걱정 없는 사람처럼 웃으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는 너무나 해맑은 영혼의
소유자다.
그의 남편이 경운기를 몰고 남의 농사일도 하고 집수리도 해 주며 그런대로 다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가을걷이를 하려 왔다니까 그녀는 구경을 한다며 따라나선다.
그녀도 꽤나 심심한가보다.
하루 종일 말할 사람이 없다는 그녀에게 가끔씩 나타나 주는 내가 그녀는 반가운 눈치다.
내 작은 농장에서 큰 수확은 못되지만 홍시감도 따고 고구마도 꽤 많이 캤다 .
그 캐는 손맛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고구마 줄을 걷다보면 가끔씩 겨울 준비하는 도마뱀이란 녀석에게 호되게 놀라기도 하지만
메뚜기가 놀라 뜀박질을 할 때는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내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두어 번 들은 헬쭉이 아빠와의 과거사를 웃으며 또 주워
섬긴다.
그런 그녀의 옛일을 듣기 싫어하지 않고 들어주는 내가 그녀는 흡족한 거다.
이제는 그녀 곁에는 그녀의 부실한 몸을 염려해 주고 마음 아려하든 부모도 없다.
대신 그녀의 착한남편이 그 부모를 대신하며 알콩 달콩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가을걷이
만큼이나 여유롭다.
그녀는 남편을 하늘같이 생각한다.
영혼이 너무 맑아 하늘을 보고 웃기만 하는 아들과 부실한 자신을 버리지 않고 부모처럼
돌보아 주고 사랑해 주는 남편을 그녀는 하느님 같다고 웃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억지 부리지 않고 자신을 비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며
사심 없이 사는 그녀의 심성이 이 가을 빛 만큼이나 신선하고 상쾌하다.
가을걷이가 솔솔이 났기에 홍시감이랑 고구마를 담아 헬쭉이네 에게 들려주었더니 아줌마의
입이 귀에 걸린다.
이제 밭에 할일도 없으니 겨울동안 못 보겠다고 했더니 날더러 겨울에 놀려오면 호박죽을
끓여주겠다 한다.
그러마고 약속을 하고 뒤돌아서니 그 고슴도치 어미와 고슴도치 아들이 서 있던 골목에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