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도 조건이 있다??
이왕이면, 온전한 가정이어야 하고, 또한 부모님의 금실이 좋으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자식은 대개 부모님을 본 받는 경우가 허다 하므로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아주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내 조건은 어떤가?
가히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생긴것: 양호
키 : 보통 그때는 큰 편이었다.
성격: 좋다.
그 외에 내 세울 게 무엇이 있었던가?
소녀 가장이었던 나에게
아는 언니가 남자를 소개 시켜 주었다.
그 언니의 신랑 친구였던 그가 나랑 넘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 언니의 첫째 아이가 돌 기념일을 맞았을 때
지금은 기억에도 없는 바닷가에서 첨 그를 만났다.
며칠 후 어느 일요일
그와 난 등산을 갔다.
도시락을 준비해서 비교적 험난한 코스를 택했던 우리는
많은 시간을 산에서 같이 도와주면서, 얘기를 하면서 보냈다.
하산 시간을 너무 많이 놓쳐서
어느 지나가는 트럭을 타고 돌아 올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결같은 맘으로 그는 나에게 그렇게 대해준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받아보지 못했던 따뜻한 정이란 이런 거구나?
하고 내가 스스로 느껴질 만큼...
그 해가 다 갈 즈음.
그에게 프로포즈를 받지도 않았지만,
어른들의 얘기로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은 나의 시부모님이 되신 분들이지만,
그 때야 생판 모르는 분들이었으니깐,
그는 딸 다섯에 외동아들이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그가 가진 그 조건도 그리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핑크빛 남방이 그렇게도 잘 어울렸던 남자는 첨 보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10년을 그 옷을 두고 두고 입혀 보았다.
언제부턴가 없어졌지만,
어쩌면 그가 나와 결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가진 악조건과 나에게선
좋게 작용을 한 그의 고집이 있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의 부모님은 그 때 어렸던 나에게 물론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른 안 계신 집이랑 사돈을 절대 맺을 수 없다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나를 선택했다.
심지어 큰 누나에게서 뺨을 맞아서 (나중에 손톱으로 할퀸 자국인 것을 알았지만,,,)
얼굴에 피가 흐를 정도였지만,
그는 당당하게 집안 어른들과 그 많아 보이던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나를 선택했다.
결혼식까지도 필요가 없으니깐,
그냥 그 때 용어로도(동거)를 하겠다고 부모님께 알려 드렸다.
놀란 부모님께서는 부랴부랴 결혼식을 치러 주셨지만,
결혼 하는 과정에서 고생한 것은 아직도 유쾌하게 남아 있지는 않다.
지금에야 시어른들도 이제는 내 부모님처럼 다가오지만,
어렸던 그 때는 그 분들이 왜 그렇게 어른다워 보이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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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때 결심을 했다.
훗날 내 아들이 어떤 여자를 데리고 오더라도 결혼을 시켜 줄거라고,
현재 이 시점이 되니깐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언제 내가 그런 맘을 가졌었지? 하는 맘으로 확인만 하고 지나간다.
나도 기성세대에 접어 들고 있고,
그래도 맘먹은데로 살아지는 게 또한 세상일이라,
13년째를 그이랑 같이 살고 있으면서,
첫째를 아들 낳고 둘째는 딸을 낳아
시부모님께도 대우를 받고 있고,
아웅다옹거리면서 나날을 잘 보내고 있다..
그는 요즘들어 옛날 이야기를 조금씩 한다.
무엇 하나도 내어놓고 자랑 할 것도 없어서
미안한 나에게 웃고자 하는 이야기인데도
나는 맘이 아프다..
어쩌면 나를 만나지 않았어도,
훨씬 더 잘 살았을 그가
살아갈수록 그의 모든 것이 알아지고 그러하다..
우연히 간 산사 스님에게서
조실부모 하였으므로 앞으로는 별 어려움없이 잘 살거라고 말씀을
하시었는데 쭉 그리되기를 바라보는 바다.
그이를 내신랑으로 보내준 어느 누구의 정성이 있었다면
솔직히 감사를 보내고 싶다.
사랑 가득한 그이를 내 옆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가끔씩 하는 소리이지만,
"나와 아이들에게 잘하는 당신 감사하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