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기억나지 않는건.. 그만큼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겠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사람의 모습.. 아마도 그보다 먼저 보았을텐데... 기억나지 않는 그 첫인상 말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은, 형편 없다.
학교 수위아저씨인줄 알았으니까.
'왜 우리과엔 저런 선배가 많지?.. 정말 짜증난다...'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그 짜증나는 모습으로부터 그 따뜻한 눈빛을 발견한건 언제였을까.
단과대학 학생회실을 찾은 날.. 사무국장이라는 소개를 받은 그가 늘 그 허림한 차림에 검은 테안경을 쓰고.. 그렇지만 양쪽 눈가에 주름이 가득지는 웃음으로 우리 후배들을 맞았다.
의왼데..?
그사람때문이 아니었지만 같은 학회에 들었고 기숙사에 있던 나는 자취하던 그선배의 방을 자주 찾아갔었다.
술마시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늘 따뜻한 목소리에 늘 배려해주는 모습.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내가 그선배를 좋아하기 시작할즈음 그는 학교를 마치고 군대에 가야했다.
그러면서 터져버린 그의 고민들은 술에 취해 후배들을 쥐어박고 자취방 유리창을 부수는 그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준 것이다.
실망.
그래도 그가 좋았다.
늘 자기보다 후배들을, 다른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한없이... 따뜻했기 때문에.
그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의 아픔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았을까?
그는 멀리 창원으로 갔지만, 그곳에서 훈련을 마친후 북한산 자락으로 배치를 받았다.
우리집에서 택시로 10분걸리는 곳이었다.
나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면회를 갔고,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써댔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했다.
그의 말대로 '순간의 열정이 아닌 언제가지나 뜨거운 사랑'을 했다.
지금까지도.
네살배기 아들은 바이러스성 장염에 연신 설사를 해대고 백일된 딸은 뒤집고 토하는게 일이다.
살림에 육아에 너무나 힘든 나날중 최악인 오늘, 그 사람은 술먹고 11시에 들어왔다.
애들보느라 신경써주지 못했더니 체중이 많이 줄고 너무나 초췌해진 모습으로..
들어오자마자 옷도 안갈아입고 아이들가운데서 쓰러져 잠들었다.
디스크를 염려할 정도로 힘든 내몸으로 그이를 굴려 양말과 옷을 벗기고 눕혔다.
"선배, 저기 하늘에 별이 너무 많아요... 꼭 숟가락으로 뜨면 젤리처럼 담길것 같아요...'
"그래?. 참 문학적인 표현이다..."
...
이런 닭살스런 광경을 연출했던 그때가 언제던가..
밤하늘에 별은 고사하고 시원한 밤바람조차 느껴볼 틈없는 바쁘고 힘겨운 나날이다.
오늘이 가고... 9월이 가고... 올해가 가고... 그러면 둘째아이 돌이 오겠지.
그럼 젖도 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편과 다시 연애좀 해야지.
"여보, 저기 밤하늘에 별이 너무 많다... 꼭 우리 하림이 초롱초롱한 눈망울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