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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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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남과 여


BY 올리브 2004-09-07

 

삐삐가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핸드폰을 하나씩 장신구처럼 애인처럼 품속에 넣고 다니지만 그땐

삐삐하고 울려대는 삐삐가 유일한 날 알리는 탈출구 역활을 해줬다..

 

그날은 아침근무가 끝나고 동료 간호사와 영화를 막 끝내고 차 마시며 그날

있었던 병원얘기를 하느라 시간이 거의 바닥이 나고 있었다..

삐삐가 울려대기 시작할때도 빨리 귀가하라는 엄마의 재촉 인줄만 알았다..

 

근데 이 번혼 내가 알고있는 상식으론 그 당시엔 말이다.. 전화번호가 너무 길었다..

옆에있는 간호사에게 물어봤다..

 

'''' 이렇게 긴 전화번호도 있어? ''''

 

있댄다 .. 근데 서울이란다..

우선은 궁금해서 얼른 전화번호를 눌러댔고 그래도 제법 여자맘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남자 목소리가 이어졌다..

 

'''' 누가 호출 한거예요? ''''

 

'''' 네.. 접니다.. 그때 바람 맞히고 또 바람 맞았던..''''

 

'''' 아.. 그래요?  근데 왜 전화 한건데요? ''''

 

'''' 다시 만나야지요.. 너무 억울하더라구요.. ''''

 

이 남자 참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잔 내 친구에게 내 삐삐번호 알아내서

만나기로 해놓구선 차가 막혀서 도저히 거기까지 갈수가 없다고 다시 집에 가

있겠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로 내 맘을 뒤집어 놓았던 남자였다..

그리곤 넉살좋게 담에 만날 약속까지 해놓고 자긴 해야할 일 다 한것처럼 너무도

위풍당당한 그남자 였던거다..

 

잘났어.. 정말...

 

난 속으로 막 짜증이 부풀어 오를대로 올라서 터지기 직전까지 갔다가 맘이

복잡해져서 잠깐 멈칫했다가를 반복했고 결국은 다시 약속시간과 날짜를 받았다..

그렇게 해야만 이 남자한테 빠져나갈 해결책이 될것 같았다..

 

두번째 만나기로 한날은 나도 할수 있다고 보란듯이  일부러 바람맞히고 삐삐도

꺼놓고 집에서 아침근무후 잠을 자고 있었고 삐삐를 다시 켜놓고도 계속 울려대는

소리땜에 징그러웠던게 생각나 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바람맞은 기분을 만끽하라는 내 배려를 알았다면 고마워 하라구 말이다..

 

뭐.. 이러면 비긴거니깐 ..

나 스스로의 만족감에 빠져서 콧노래까지 나왔던게 생각났다..

 

일주일후 우린 정확하게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래 벌써 세번째 시도다..

내 기억을 믿고 약속장소로 잡은 곳은 근데 하필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중얼대며 삐삐에다 메세지를 남기려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하필 그땐 그 흔한

공중전화도 보이질 않았다..

 

할수없지 뭐.. 아무곳에나 들어가서 다시 연락하지 뭐..

근데 시간이 너무나 빠듯했다..

눈에 들어오는 아무곳을 정하고 다시 연락을 해야하는데 앞에서 전화걸고 있는

끝까지 도움이 안되는 이 사람들땜에 난리가 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나한테 다시 삐삐가 울려댔고 난 한참이 지난후에야 메세지를 남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니 정신이 확 달아났다..

 

애고.. 애고.. 이거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냐...

이게 뭐냐.. 내가 여기까지 만나러 와야 하냐구.. 정말 ..

 

이 남자말야..  나랑 인연이 있긴 한거야?

내가 이거 밥도 못먹고 이게 웬 수선이냐구...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어수선하고 헝클어진 짜증스런 맘땜에 의자에 기대어 멍청하게 물만 마셔대고

있을때였다..

 

'''' ooo 맞죠? ''''

 

직감과 육감으로 황급히 올려다 보는데

 

아 .. 미치겠어.. 이 남자 .. 이거 너무 하다구..

어쩜... 나랑 똑같잖아...

 

맘 구석진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이성을 밀쳐내고 내가 징징대고 있었다..

나랑 쌍둥이였다..

 

난 어릴적부터 유난히 말라서 별명이 올리브.. 젓가락.. 빼빼... 그런거였는데

이 남잔 나보다 더 심했다..

난 다 참아도 이 남자처럼 마른장작은 내게 지구를 다 안긴다해도 싫다고 늘

광고하고 다녔었는데 도대체 난 참 남자복도 없다고 웅웅대며 머리속에서 이

남잘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하기에 바빴다..

 

먼저 난 먹어야 했다..

아침근무때 바빠서 점심도 못 먹었고 아까의 정신적 고통땜에라도 일단은 욕구

충족을 해줘야 했다.. 정말 열심히 먹어댔다.. 뭐라고 떠들든 말든 우선 먹어줘야

이 고통과 억압에서 헤어나올것 같았다...

 

나중에 같이살게 되면서 이 남자가 하는말

 

'''' 그때 너 진짜 귀엽구 이뻤다.. 삐적 마른애가 오몰오몰 먹어대니깐 기분 좋더라.. ''''

 

우리가 세번째 시도해서 만난 기념으로 기념회 하자면서 근처 장흥으로 가면서도

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었고 그때까지도 오늘 참 허무한 날이라고 도리질

해대느라 머리가 아파왔다..

 

장흥에 도착하면서 난 또 배가 고팠다..

 

간호사가 되고부턴 늘 내 가방엔 비상식량이 있었다.. 제때 밥 챙겨먹을 시간이

부족했던때라 차안에서 길 가다가 잠시의 공복감을 비우고자 초코렛 사탕 과일

음료수 등을 넣고 다녔는데 그날은 귤이 있었다..

 

아까 그곳에서 나만 열심히 먹어댔던 기억이 났고 나만큼이나 불쌍하게 삐쩍

마른 남자가 그땐 좀 안됐다는 생각에서 귤 까서 반개를 앞에다 내밀었는데

갑자기 막 웃었다..

무안한 생각에 왜 웃느냐고 했더니 이런여잔 첨 이란다..

 

뭐 그 정도 외모로 여잘 얼마나 많이 만나고 다녔길래 이런여자 첨이라구?

 

내밀었던 귤까지 내가 다 먹고나니깐 그제서야 한마디 하는데

 

'''' 생각보단 참 맘이 이뻐보여서 좋은데 담에 또 만날꺼죠?

   담엔 한번에 딱 한번에 만나자구요.. 아.. 오늘 사실 너무 스트레스 먹어서

   정신이 없었어요.. 또 어긋나면 평생 후회할것 같아서.. ''''

 

이 남자 웃겨.. 뭐야.. 이거.. 내가 맘에 든다는 거야?  난 아닌데...

나한테 물어봤냐구...

 

그리고 이틀후 병원으로 전화가 왔고 내가 어디서 만나고 싶냐고 했더니

 

'''' 63 빌딩..''''

 

그때 섹시하고 묘한 매력덩어리 남자가수가 불렀던 노래가사를 흉내내며

말하는데 난 옆에 있던 간호사를 잠시 잊어버리고 마구마구 웃어대는라

정신이 없었다.. 이 남자에 대한 빈곤함이 막 사라지려고 했으니깐..

 

우리가 네번째 만난날 ..

 

서로의 말라빠진 모양새에 신기해하면서 만나기만 하면 먹을것부터 밝혀대며

열심히 먹어댔건만 그 엄청 신기한 모양새는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만난날엔 먹어도 먹어도 채울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