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뉘 시더라?
바지에 날을 잔뜩 세우고, 십대들이 즐겨 쓰는 동그란 모양의 까만
선글라스끼고 맥고자 모자에 후까시 잔득 넣어 멋을 낸 영감님
어디서 많이 뵌 듯 한데 어디서 봤더라?
오늘 아침 그 영감님을 마을 어귀에서 만났다.
발걸음이 붕붕 바람 실린 풍선의 모양을 하고 있다.
영감님이 지나간 자리엔 여름 밤 꿀벌을 유혹하던 밤꽃의
은밀한 내음이 남아 있다.
페로몬.
페로몬 내음.
아직 발라 본 적이 없는 내 후각은 아니 뇌는 페로몬 향내
라는 단정을 내린다.
페로몬의 은밀한 내음안에 영감님의 겨드랑이를 질척하게 했을
완전히 스며들지 못한 땀 내음이 내 예리한 후각 속을 파고 들어
왔다.
유혹의 내음과 삶의 내음이기도 한 땀 내음의 엉성한 어울림.
땀 내음이 어울림을 잠깐 삐져 나온 순간 그가 누구란 걸 알아 차릴 수 있었다.
앞집 영감님이다.
오늘 새벽 장마로 축 쳐진 하우스에 고인 빗물을 쓸어 내리던
마르고 긴 손을 가진 그 영감님이다.
어쩌면 그의 며느님이 아니었더라면
모자의 창이 너덜한 밀집 모자에 진회색의 낡은 츄리닝에 허벅지까지
올라 오는 노란 장화를 신었던 다소 남루하게 보였던 하우스의
빗물을 쓸던 영감님을, 멋쟁이 영감님과 같은 사람으로 연결시키는 일이
불가능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에 그의 며느님이 그랬었다.
우리 아버님때문에 미치겠어요.
매일 아침 일찍 하우스에서 일하시고 정오가 되면 어김없이 시내엘 나가시거든요. 아버님이 들르는 곳은 뻔해요. 장미 다방.
언젠가 내가 들러 본 장미 다방엔 장미가 여럿 있었다.
4-5명의 장미.
그 곳의 장미는 시든 꽃잎이었다.
대체로 장미는 시골 노인들의 말 동무를 해주며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도 하였고, 곤곤한 삶에 종지부를 찍고 싶은 장미는
시골에 땅이 많은 노인을 물색해 그들의 외로움안으로 파고 들어와
안살림을 차지 하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영감님에게도 장미가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한다.
1년전.
50대 초반의 장미는 70노인의 마음에 머물다 6달 만에 떠났다.
노인에게 온갖 아양을 떨던 장미는 삼천만원이라는 거금을 손아귀에
넣은체 영감님곁을 아주 떠났다.
차라리 그렇게 떠날 요량이면 정을 떼고 나 갈일이지.
그후로 영감님의 외로움은 눈덩이처럼 불어 났고 혼자 있을때
덩그란히 남아 있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영감님은 한때는 장미다방에
만사 제치고 가 계셨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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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유월이 참 잔인한 달로 기억 될 것입니다.
초록의 눈부심도 꽃의 아름다움도 감각 기관이 마비된 양
아무런 것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쓸 수 없었고 또한 댓글 조차 달기 어려웠습니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죄스러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합니다.
아직 우리의 마음에 자리잡은 이 아픔이 먼저 가신 님에 대한
작은 사랑이겠지요.
고 김 선일 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당신의 아픔 잊지 않고 오래 기억 할 것 입니다!!
사랑합니다. 형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