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소식에 배들은 방파제 안으로 모두 피양하니, 집어등 불빛 하나 없는 밤바다는
유난히 검다.
멸치젓갈을 담는 드럼통들 수십개가 태풍에 대비해 그물로 야무지게 묶어 놓았다.
아직 세차지 않으나, 하루 노동에 쳐진 어깨에 걸리는 바람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다.
태풍이 불어 올 때면, 정면으로 바람 맞는 색바랜 나의 얕으막한 지붕이 가로등 아래 서있다.
그 아래 차양이 쳐진 담배 가게, 아래 자동판매기... 모두 위태로와 보인다.
내일은 자판기를 덮고 있는 차양의 끈을 풀어 놓아야겠다.
약한 바람엔 거뜬히 버티는 저 끈은 태풍이 오기 전에 풀어 놓지 않으면, 강한 바람 아래선 철골조마져 날려 버리게 할 것이다.
해풍에 삭아진 빨강과 흰색이 배색 된 차양이 깃발처럼 펄렁 거린다.
어떤 시인은 깃발을 잡아맨 끈을 보며, 달아나려는 의식을 붙잡고 있는 두 힘줄이라 했다.
얼마나 기막힌 비유인가.
달아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댈 때마다 나는 깃발을 떠올리며, 내 의식의 두 힘줄을 잡아매곤
한다.
자신을 지탱하는 척추같은 끈, 그 끈을 놓아 버린 사람을 안다.
사십대 초반의 그 여자는 섬에서 자란 해녀였다.
홀어머니 장남에게 시집 온 여자는 억척스럽게 바닷속을 헤치며, 전복과 소라를 따며 살았다.
어느날, 다섯살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일을 나갔던 여자는 집 앞의 바다에서,
떠다니는 미역줄기처럼 둥둥 떠 죽어 있는 아들을 건져내었다.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둘째가 태어나자, 여자는 죽은 아들을 잊으려고 일하고 ,둘째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더 억척스럽게 일했다.
그래서, 부부는 서른다섯에 번듯한 삼층 건물을 지어 부근에서 제일 큰 횟집을 시작했다.
365일 중, 설날을 제외하고는 쉬는 날도 없고, 종업원도 거의 없이 일했다.
좀 편해질만하니, 치매에 걸린 친정 어머니가 여자의 몫이 되었다.
2년을 집에서 모시고 있다가, 지친 부부는 집 가까운 곳에 방을 구해 어머니를 눕혀 놓았다.
이른 아침, 혹은 늦은 밤, 어머니에게 가는 여자를 만나면,
"..그러게나, 빨리 죽기라도 하지..."했다.
올해 초, 봄이 얼마 남지 않은 날, 여자의 말처럼 여자의 어머니는 죽었다.
한동안 여자는 어머니에게 가던 그 시간을 멍하니 있더니...
얼마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전, 우울증 진단을 받은 여자의 집에 굿판이 벌어졌다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버이날 아침, 어머니 상에 꽃이라도 갖다놓으려한다며, 죽은 후에야 상을 모셔간 오빠 집을 향하던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집과 건물 두개를 사이에 둔 여자의 집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에이, 바보...하며.
여자가 여지껏 붙들고 살아 온 것은 무엇이었길래 그렇게 슬며시 놓아 버린 것일까.
대문앞에 서서 여자가 잠들어 있을 건물 꼭대기를 본다.
'돈방석'
꺼진 간판이 가로등 불빛을 받고 있다.
이제야 여자는 알았을까.
돈방석에 앉는 거 그거 별거 아니라는 것을.
그 별 거 아닌 것을 붙들려고, 세상의 즐거움에 눈길 한 번 못주었을까하며 억울해서,
의식의 끈을 슬몃 놓아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양의 끈을 풀어 놓지 않았다가 통째로 골조를 날려 버림과 같이.
아이들이 즐겨 보던, 디즈니의' 피노키오' 의 대사 하나가 생각난다.
'바보같은 사람들은 줄을 던져 주면, 자기 몸부터 묶는다니까...'
바람이 대문을 밀어 '삐걱'하고 열려야 할 것이 와당탕 열린다.
복잡하게 밀려드는 생각들처럼 바람이 마당 안으로 세차게 밀려들어 온다.
사방이 시끄러워 진다.
아무래도 태풍에 대비해 집 단도리를 해야겠다.
이만한 바람에 견디지 못하는 것들이 태풍은 어찌 견디나 싶다.
더불어, 내 의식의 문을 열고 둘러 보며, 묶을 건 묶고, 풀을 것은 풀어 놓아야겠다.
내일은 태풍이 온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