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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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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묻지 마세요.


BY 올리브 2004-06-07

선배가 드이어 아기를 낳았다.

연애도 원없이 하고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더니 기다리던 아기를 안게 되었다.

근데..

새 생명이 태어나는 소식을 접할때마다 내 맘속에 응어리진 멍자국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건 시간이 이리도 흘렀건만 지워지지가 않는다.

 

남자든 어머님이든 여자가 결혼해서 아기를 갖고 또 아기를 낳는다는 건 순리에 당연한 법칙외에는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에서 난 말못할 섭섭함과 답답함으로 아이를 품에 안고 기다렸고 아이가 태어나서도 주전자에 보리차 하나가득 담아서 방문하는 어머님 모습에서 남들도 이런가 보다 그렇게 잊고 지냈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하다못해 옆집에서 아기를 낳아도 몸조리 하라고 미역 한다발 사들고 오는게 정이고 당연한 건데 난 그런 기본적인 대우도 받지 못했었다..

그럼. 남자의 행동은 어떠했을까.

 

물론 똑같았다.. 남들 다 낳는 아기. 뭐 그렇게 챙겨서 받아야 하냐.. 그런식의 시큰둥한 반응과 어머님의 며느리에 대한 무덤덤한 반응이 당연하다는 태도에 난 참 상처가 컸었다.

 

푸근하게 챙겨주는 친정엄마가 아니었기에 내가 일일이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퉁퉁부은 몸으로 첨부터 내 손으로 아기를 챙겨야 했기에 아기에 대한 이름모를 애정도 생기지 않았었고 낮이건 밤이건 자지않고 날 힘들게 하는 아기땜에 하루하루가 두렵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살면서 지난 얘기들을 하는 자리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었다.

시댁에서 고기 사먹으라고 돈을 줬다. 산후엔 뭐가 좋다고 해서 시댁에서 사줬다.

보약해서 먹었다. 병원비 하라고 돈도 주시더라..

 

나는 그럴때마다 할말이 없었고 우스개 소리로 한마디 하면 다들 거짓인양 웃어버린곤 했다.

 

'' 난.. 애 낳을때 소리지르면 목 마르다고 보리차 한 통 가지고 오려는거 울 형님이 말려서 주전자에다 담아왔다고 하더라. ''

 

진짜냐고 재차 확인하는 선배 후배 친구들한테 기 막히다는 위로말을 들으면서 그 날은 내내 내 존재가 비참하기까지 해졌다.

 

선배가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며칠전 갔다온 날.  그때의 씁쓸한 기억땜에 눈물까지 뚝뚝 떨어지는걸 보니 내가 참 상처가 컸었던것 같다.

어머님이 원래 그런분 이시라고 형님들이 알려주셔서 그냥 난 잊으려 했다가도 남자의 무심한 대사 한마디 한마디는 날 보잘것 없는 여자로 치부하는것 같아서 싸하게 뒤틀어대는 아픔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친정엄마도 그렇고 시어머니도 그렇고 남자도 그렇고..

 

아기는 원래 빼빼인 날 더 빼빼답게 해줬고 후원없이 남들도 그렇게 키운다고 툭 던져내는 남자덕에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의 아기는 갖고 싶지 않았다.

 

아이도 다행인지 그 또래들이 자주 하는말인 동생 낳아 달라는 말로 날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았고 남자도 내 결정이 불만이어도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았다.

 

 

선배는 산후조리원에서 편하게 몸조리 하면서 집에 와서도 산후도우미의 보살핌에 너무 좋다고 했다. 나한테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 선배한테서 보여지는게 돌아서면서 참 부럽고 맘 한구석에서 알것 같은 슬픔이 하루종일 입맛을 잃게 해줬다.

 

지금도 아이가 7살이 되었지만 겨울이 아닌 여름이면 손 발이 짜릿하게 감전되듯한 기분 나쁜 몸 상태가 싫고 무거운거 제대로 못 드는 날 보고 남자는 엄살로 치부해버리곤 했다.

 

그럴때마다..

 

'' 엄마는 나 낳느라 힘들어서 몸이 약해.. 그래서 그런거 잘 못들잖아.. 아빠가 들어. ''

 

이 한마디가 내가 든든하게 버틸수있는 에네지가 된다는걸 남자는 몰랐다.

 

 

내 과거는 비참했고 앞으로도 이런 비참함을 잊는다는건 힘들것 같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 아픔이 가라앉기도 하겠지..

 

친구나 선배 후배들이 아기낳고 툴툴댈때면 내가 받아왔던 무심함을 말해주면 다들 자신들의 환경을 고마워하곤 했다.

 

 

또 한번 하루가 아팠다. 그리고.. 그건 내가 받아들여야 할 억울해도 안아야 할 맘 아픈 과거였고 이젠 조금씩 날 추스리려고 한다..

 

대신 내겐 날 닮은 아이가 내 맘속에서 과거를 묻어주려고 애쓰지 않은가..

그걸로 만족해야지..

 

 

그래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