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을 무사히 다 지었습니다.
집을 짓기 전, 머리 속에 그려 넣었던 모습보다
한층 멋진 자태로 드러난 사랑방이 자못 흐뭇합니다.
하지만 집이 완성되기까지 잘 지어질까 근심이 은근히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직접 집을 짓는 건 아니지만, 마치 집 짓는 노동을
하는 것처럼 저녁이면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아마 그 근심에서
나온 피로인가 봅니다. 집 짓는 일이 大事이기에 집을 한번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생겨났겠지만, 다행히 2년 전 집을 지어준
업체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큰 마음고생이 없이
사랑방이 완성되었습니다.
사랑방에 이런 저런 살림살이들을 들이고,
청소를 끝내고 나서, 그 새로운 방에서 차 한잔을 들며,
마치 여행 온 기분이 되어 멀리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물과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옆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큰아들이 "엄마! 우리는 여행 안가?"하며 조금 볼멘 소리를
합니다. 그래서, "여기, 우리 여행 왔잖니! 우리는 매일 이 곳으로
여행 와서 민박하는데!"하며 조금 억지 소리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여기저기 여행 다니던 기억이 저도 새록새록 나고
아이들도 가끔 그 때가 그리운가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제일 많이 다녔던 여행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지리산 자락이었답니다. 여행지가 삶의 터전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그 멋진 여행지가
갑갑한 삶의 틀로 화(化)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요.
어째든 사랑방에 있자니, 몇날 몇일 요런 단출한 살림살이가 있는
곳에서 여행 온 것처럼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에서 탈출하여 낯선 곳에서의 생활! 무언가 어릴 적 호기심이
묻어날 것만 같은 낯설음을 즐겨보는 맛! 일상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보는 것! 그것도 여행의 묘미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일상에서
우리가 소유하는 삶의 도구가 왜 이리 많은지,
일상이란 무게가 그 도구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죠.
단촐한 사랑방에 있자니 일상이란 무게가 대조되어 자꾸만
단촐해지고 싶어집니다.
안채를 짓기 전, 마을 할머님 문칸방에서
몇 개의 숟가락과 여행용 가스 레인지와 몇 벌의 옷으로 지내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지낼 만 했는데, 3개월 째, 접어드니
방 한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밥하는 일이 고역이더라구요.
샤워는 고사하고 얼굴과 발만 씻는 일도 힘들었으니.....
인디언들은 스무 가지에서 스물 다섯 가지의 물건만 소유하며
평생을 살아간다고 하는데, 이미 만가지 이상의 물건이 필요한
현대 문명에 길들여진 저로서는 그 때가 불편하기 그지 없었지요.
예전엔 민박하면 소박한 시골 정서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좀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요. 한 여름 땀이 뻘뻘나도 샤워할 수가
없기도 하고, 밥해먹는 모든 도구를 챙겨 가지고 가야 했으니까요.
요즘 이런 불편을 없앤 민박이면서도 꽤 고급스런 이미지의 숙박시설인
펜션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저희 사랑방이 이런 펜션이 아니냐구요?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희 사랑방은 그런
고급 숙박시설인 펜션이 아닙니다. 예전 민박의 불편한 점을
해소한 좀 더 편리한 민박입니다. 바램이 있다면, 소박한 시골 정서도
느껴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시골의 녹색 전원에 흠뻑 젓을 수
있는 환경이랍니다.
사랑방을 다 짓고 나니 이틀 간 연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앞산에선 하얀 안개가 피어나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물은 평소보다
세차게 흘러갑니다. 뒷산의 오동나무는 어느새 보라색 꽃을 피우고
향을 품어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풀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이 보일
지경입니다. 그만큼 풀들의 뿌리는 땅 속 깊은 곳으로 퍼지고 있겠지요.
그들 뿌리처럼 저희 사랑방도 도시인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