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이 할매. 한때는 내게 아픔을 주었던 이름이지요.그러고 보니
할매가 이곳을 떠난지 벌써 넉달이 되어가는군요. 어젠 그 할매
가 얼마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며느리로 부터 전해 들었지요.
옥이 할매를 처음 만난건 지난 해 가을 이곳 홈에 오실때 였지요.
하얀 바탕색에 얼룩얼룩 꽃 무늬가 그려진 얇은 스웨터를 입은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 집 대문을 넘어 들어 왔지요. 아들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으며 거실을 들어 와선 처음 뵙겠습니다. 했던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겉으로 너무 멀쩡해 어찌 저런 분을 모시고 왔을까 의아해 하는데
아들은 어머니가 6개월전에 치매가 발병해 잠을 전혀 주무시지 않고
밤 새 돌아 다닌다는 겁니다. 감당하기 어려워 시설에 모실까 여러
차례 생각해 보았지만 어머니를 남에게 맡긴다는 것이 쉽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상태가 좀 덜한 것 같아 모시고 왔다 했습니다.
미리 이별 연습을 해두었는지 그날 남겨진 할매는 대문을 나서는 아들
며느리에게 담담히 손을 흔드셨고 정작 대문을 나서는 아들의 눈은 붉게
충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후 2-3일 잘 적응하나 싶더니 할매는 아들을 찾아내라 조르기 시작
했습니다. 조석으로 전화를 해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할매가 이곳에서 적응을 하도록 당분간 면회를 하지 말도록 권유를 했지요.
어머니 생각을 골똘히 하다 어느날 출근길엔 엉뚱한 곳으로 차를 몰았다는
아들은 가끔씩 먼발치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돌아 가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흘렀고 할매는 생활에 적응이 되어 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잠결에 대문 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밖을 나가 보니
대문앞 수채 구멍에 얼굴을 박고 헉헉거리는 할매를 발견했습니다.
아들이 보고파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잠을 안 주무시는 날이 부쩍
늘었습니다. 어느날은 "나 한번 만 업어 주라 응? 그럼 잠이 잘 올 것 같아"
하는 것 입니다. 등에 매달린 할매의 작은 몸은 가벼웠습니다. 대문을 나서
집을 한바퀴 두바퀴 돌다보면 한바퀴만 더 더 하던 할매의 목소리가 잦아들
무렵 자리에 누이면 깊은 잠에 빠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상태도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할매는 갑자기 옷을 훌러덩 벗어
버리거나 밖으로 뛰쳐 나가기 일쑤였습니다. 할매의 안정이 필요 한 듯하여
근방의 정신과 병원에서 치매약을 처방받아 드렸지요. 약에 민감한 할매는
미량인데도 약을 드시면 왼종일 정신없이 주무시기만 하여 촉탁의 선생님의
방문 진료를 받게도 해드렸지요. 약을 안드시면 과다 행동이 문제요 약을
드시면 축 늘어져서 문제였지요. 격일로 약을 드시게 하고 하루 종일 누워
있게 되면 욕창의 우려가 있어 밤 낮으로 2시간마다 체위 변경을 해드렸지요.
그런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저귀를 찬 할매의 엉덩이에 수포가 생기
더니 치료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았고, 물을 과량으로 마셔서 당뇨를 의심한
나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했지요. 할매는 우려한데로 당뇨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당뇨 약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뇨약을 먹은 첫 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식전 약을 복용후 아침 식사를
충분히 했는데도 할매는 갑자기 의식을 잃었습니다. 혈당이 갑자기 내려간 인슈린 쇽크였는데 의식을 잃어 설탕물을 투여 할 수가 없어 병원으로 후송을 했지요. 농축 포도당을 혈관으로 투여받은 할매는 의식이 돌아왔고 욕창이 호전되는 데로 다시 돌아 가마 하며 할매는 날마다 전화를 걸어 달라해서 안부를 전하곤 했는데 욕창으로 입원기간이 길어지자 마음이 바뀐 모양입니다.
어느날 할매가 보고파서 병실을 방문했더니 할매는 "내가 너희집 다시는 안간다
매일 두둘겨 패고, 밥을 굶기고 못된 인간들아" 하며 삿대질을 하는 것입니다.
저으기 당황스러워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하는데 할매를 간병하던 분이 한마디
거듭니다. "할머니 어떻게 했는지 한 번 흉내내 보세요"하니 할매는 팔꿈치로
옆에 있는 간병인을 내리 치는 자세를 취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리얼한
동작이었지요. 내가 혹 그러지 않았나 내가 날 의심할 정도로. "요즈음 내가
보기에 할머니 정신이 멀쩡한 것 같아 신빙성이 없어 보이지 않네요. 그리고
얼마나 방치 했으면 멀쩡한 엉덩이를 욕창을 만드누." 하며 빈정거리자 옆 침대
보호자들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버선목이 아니니 뒤집어 보이겠습니까? 당황스러
운 나는 병실을 황급히 나오고 말았지요.
그 날 이후로 한동안 불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에 대한 회의가 짙게 밀려와
감당하기 어려웠지요. 시작하기전에 답사했던 어느 노인 보호소에서 환자를
대하던 구태의연한 태도들이 이해가 갈 듯도 했습니다. 내가 시도했던 최선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이젠 종전과 다르게 보다 쉽게 내 편한데로 관리하자 하며
마음을 바꾸어 보았지요.
일찍 일어나 밥을 달라하는 노인에겐 이른 시간에, 늦잠으로 식욕이 없는 분에겐
늦은 시간에 제각기 식사 시간을 달리 하면서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식사를 제대로
하게해보자 했던 생각을 우선 철회하고 일률적으로 식사 시간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밥 한그릇을 다 못 비우는 분들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밤은 빈속으로 잠을 재운
적도 있지요. 그날은 어른이 배고플 것 같아 밤새 맘편하게 잘 수있나요? 결국은
내가 내맘이 편하기 위해서라도 종전데로 하자며 이틀 만에 변경하였지요.
그렇게 아픔속에 넉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넉달 가량을 할매를 만나보지
못했으며 매일 전화를 하던 며느님과의 통화도 단절되었습니다. 전화를 해야지
하다가도 변명을 하는 것 같은 상황이 싫어 그만 두었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야속함은 동구박을 나설때는 등짝에 납짝 엎드렸던 감촉이 살아났으며, 노인들의
기저귀를 채울때면 변비로 동글동글 토끼 똥 같은 변을 파 내어 주던 생각과 유난히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던 변과, 고름을 짜 주던 엉덩이의 감촉과,배가 고파 잠이
안와 해서 야식으로 내드린 닭다리를 잡고 오물거리던 할매와의 추억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떠나시기 전 한 번 찾아뵐 것을. 이젠 다시는 볼 수없을 걸. 미워할래야 미워 할 수
없는 할매는 내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가셨지요. "그 동안 정성껏 보살펴줬으니
고맙다고 전해라." 할매가 떠나시기 전 정신이 돌아와 가족에게 남긴 유언의 말씀
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