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이렇게 서문을 썼습니다.
'나에게 글을 쓰는 재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엄마 이게 제가 쓴 책입니다"
엄마의 야윈 품에 책 한 권을 안겨 드립니다.
"그래~ 고맙다. 수고했다."
등을 토닥여 주시는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며 저는 오래 전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그때가 아마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엄마는 어느날 저를 데리고 책이 많은 커다란 서점으로 가셨습니다.
내 키의 몇 배나 되는 높이로 가득가득했던 그 서점 이름은 '옥샘서원'입니다.
서점이 아니라 서원이어서 일까요?. 35~36년 전의 그 서점 이름을 제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게 말입니다. 언제나 글자가 새겨진 종이면 무엇이든지 들여다 보며 놀던 저를 어머니는 유심히 지켜 보셨던가 봅니다. 이웃집 언니가 보던 '선데이 서울'이라든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무슨 동인지 라든지, 어느 학교 교지, 잡지 나부랭이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읽어 대던 저를 나무라시지도 않으시며 언제나 그런 저를 미소로 지켜 보시던 엄마이셨습니다.
우리 엄마는 저에게 서점은 책을 사는 곳이라는걸 제일 처음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자 니 맘에 드는 책을 마음껏 한 번 골라보렴"
하고 제 뒤로 한 발자욱 비껴 서시던 엄마의 모습을 지금도 저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서점 출입 문을 등 뒤로 하고 엄마가 서 계셨습니다. 엄마 등 뒤의 햇살에 눈이 부셔 마치 엄마 모습은 책속에 그려져 있는 천사의 등 뒤에 무지개 같은 빛을 달고 서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엄마는 그렇게 저를 말없이 지켜 보시고 계셨습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이라 보고 싶은 책들을 제 욕심대로 다 고를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저 였습니다. 제가 아주 오랫 동안 서점안을 서성이며 고른 책은 '소공녀와 키다리 아저씨'였습니다. 엄마는 빙긋 웃으시며 제 손을 이끌어 책이 꽃혀 있는 책장 한 켠으로 가셨습니다.
"이건 어때? 이거 니가 궁금해 하던 사람들에 관한 위인전인데…보지 않으련"
"그런데 엄마 그건 너무 비싸!"
"아니야 엄마가 사줄수 있어서 물어보는 거야'
"좋아 엄마"
철없는 저는 좋아서 깡총깡총 뛰었습니다.
그때는 배달이라는 제도가 없을때라 이웃집 리어카를 빌려서 책을 집으로 가져 왔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삼성당''세계위인 전기전집''한국 위인 전기전집'입니다.
그 책들이 우리집으로 오던 그 날부터 저는 어마어마한 부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 주위 친구들 집에서는 그 책들이 없엇기 때문입니다. 몇 일인가 밤을 새며 그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리던 어느날 저는 엄마의 손에서 금가락지가 없어져 버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 반지 어떻했어?"
물으면
"응 끼고 있으면 닳을까봐 장농 속에 넣어 두었지?"
저는 엄마의 그 말을 믿고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훗날 제가 중학생이던 어느해 어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그 금반지를 책과 바꾸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내가 돈 벌어서 엄마 반지 해드릴께요' 그 약속은 아직도 못지켜 드리고 있습니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그 위인전은 친정 집의 한 쪽 벽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몇해 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서 읽게 하려고 그 책들을 꺼내어 보았습니다.
잘디 잔 글씨체, 노랗게 변해버린 종이, 무엇보다 그 책을 포기 해야했던 이유는 너무나 달라져 버린 문법입니다. 예전에 쓰던 '읍니다'와 지금의 '씁니다'가 문제였습니다.
제가 포기하고 두고 왔던 그 책들이 친정집을 새로 짓게 되면서 모두 폐휴지가 되어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산뜻하게 만들어진 제 책 한 권으로 어머님의 사랑에 대신합니다.
'늙으면 젊어서 보고 싶어 했던 책을 다 볼려고 했더니…이제는 눈이 나빠서 못보겠다고'아쉬워 하시며 도수 높은 안경을 찾아 쓰시는 어머니를 보는 제 마음이 미어집니다.
어머니!. 당신에게 어머니의 이름 앞에 딸의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