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쫘~악 들어오는 거실바닥에 누워 겨울 일광욕을 즐긴다.
따뜻한 햇볕이 따사롭고 좋기만하고 사랑스럽다.
그옛날 봄볕만큼이나.....!
..............?........?....~*
주홍빛에 초록잎, 노랑잎, 어린 이파리들이 나불 거리는
벨벳홈드레스를 입고서 난 연수생 새색시가 되었었다.
날이 밝으려면 한참인 어두컴컴한 새벽 5시쯤부터 일어나야 했었고
바지런하기로 수십년 몸이 다져진 시어머니의 보조로 자동적으로 채택 되었지.
직장인이셨던 아버님은 오히려 후견인이시고
머슴들을 데리고 대농을 이끌어 가시는 체구가 조그맣고
재빠르시고 다부지신 시어머니.
하지만 나에게는 사랑스런 눈빛을 보내셨고 아예 관대 하셨지...
그때만해도 연탄에 국물이나 찌게를 하고 밥은 아궁이에
불을 지펴 준비하던 그시절...
시어머니께선 겨울인데다 쉽다고 생각한 불 지피는 일을 내게 맡기셨다.
실은 난 그무렵까지도 어렸을때 장난삼아 하는 불장난 말고는
불지피기를 해본적이 없었다.
세수 하는 척하고 부엌쪽을 힐끔 거리며 본 신랑은 속이 타 죽을지경이었다고...
왜냐면 밥이 익을려면 불을 활활 지펴야 되는데 나뭇가지 한개씩을 넣고 있드라는거다.
(나중에 친정 갔을때 흉 본 얘기다)
그래서 나는 따뜻하게 불 지피는 일도 중도에 하차 되었고
그야말로 설겆이,수저챙기기...등 허드렛일만 하게 되었다.
신랑은 쉬는 기간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 갔고 나는 정말 혼자 남게 되었지.
다행히 막내 아가씨가 그해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발령을 기다리고 있는터라
그나마 말벗이 되었었다.
최씨가 거의 사는 과수마을...
그 동네는 물론 아랫 마을까지도 친척이 대부분이었다.
"얘야~ 오늘은 아랫마을 고모님댁에서 저녁초대가 있다 준비해라~"
하시는 시어머니 말씀이 떨어지고 난 어머님과 함께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고
아랫마을 친척집들을 향해 논둑길을 시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신랑도 없이...
그래도 집안 식구가 되면 친척 집집마다에서
새부부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된다는 관례 때문에
한복을 입고 어른들이 해주는 어려운 식사 대접을 받아야만 했다.
참 난 이거원 내가 갑자기 이조시대로 되돌아 왔나할 정도로
모든일이 생소하고 또 어려웠지....
하여간 난 새벽에 일어나 아침,점심,저녁을 챙기는 일을 아가씨와 함께
해야했고 인형이 된것처럼 긴옷을 늘어 뜨리고 하루를 바둥거리는게
정말 피곤해 저녁이면 골아 떨어졌다
열흘쯤 지나 색시야~ 하는 편지가 날라 왔고
얼마쯤 지나 신랑이 다니러 왔고....
쬐금씩 익숙해 질 무렵 난 무료 하기 시작했고 봄이 오고 있었다.
거기는 과수마을이라 수박농사 준비라고
옆 터 하우스안에서 종이컵만한 프라스틱 컵에
수박씨를 심어 하우스 안을 가득차게 했었다.
새싹이 돋고...주위에 쑥도 뾰족 뾰족 나오고 완연한 봄이 오고 있었지.
신랑이 한 세번째 왔을때
"저~ 아버님, OO를 서울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 그래? 그래라...아무래도 ....그렇지??"
................................................??!!?
그래서........그래서.......난.
6개월을 못 채우고 5월초에 서울로 오게 되어 이날까지 이사를
다섯 번 하고 머나먼 시댁길을 널부러진 집안 대소사 행사로
수도없이 경부 호남고속도로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나마 참 잘했다 싶은게
비윗살 없는 내성격에 그래도 시부모님을 가깝게 하며 살게 되었다.
지금도 시댁에 가면 개조로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혼자 무서운 밤을 쓴약 꿀꺽 삼키는것처럼 오들거리며 보냈던 끝방에
벌렁 누워 천정을 쳐다보며 헤헤 거리며 두녀석들에게 엄마가 연수하며
기거했던 방이라고 집고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