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특히 설 명절이면 어김없이 하는게 떡국이잖아요
저는 떡국만 보면 지금도 그때 생각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20여년전 시골에서 방앗간을 하시던 부모님께서는 명절이면
가장 큰 대목이기에 한달 전부터 기계도 수리하고 아무튼
우리집 명절은 다른집 보다 한달은 항상 빨랐답니다..
부모님이야 명절이면 큰 돈을 만질수 있기에 좋다고 하시지만
땡전한푼 떨어지지 않는 저는 정말 지긋지긋한 설 명절이
되었죠..
부끄럼 많고 수줍음 많던 저는 명절이면
어김없이 이미지 구겨지는 날이었기에..
얼굴이며 ...옷에는 여기저기 떡가루가 범벅이 되었고
손은 퉁퉁 불어 허옇게 각질이 일다못해 갈라지기까지
하긴 하루종일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죠
왜.....하필 .....언니도 있는데 제가 가래떡 자르는 일을
하게되었는지....
그건 제가 우리집에서 떡을 가장 정확하게 잘 자르기 때문이죠
자로잰듯 팔뚝길이로 정확하게 잘려지는 떡...
가족들을 포함한 이웃분들의 칭찬에 힘입어 더욱더 정확하고
예쁘게 자른게 오늘 나를 비참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인 셈이죠..
언니는 그걸 간파라도 한건지 길고...때론 짧게 떡을 잘라
아버지께 매일 야단을 맞았죠..
그땐 쾌재를 불렀는데......
예쁘게 서서 생글생글 웃으며 사람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커피나 대접하는 언니가 얼마나 얄밉던지...
명절이라 그런지 끝도 보이지 않는 줄...(순서데로 줄을 섰거든요)
시골에 먹거리가 부족한 탓에 집집마다 떡 한말은 기본이었고
어떤 집은 고향 찾는 친척분들께 나눠 주신다며 한가마니씩
하는 사람도 있으니....
일주일 밤새는건 기본이거니와 하루종일 허리 구부리고 떡을
자르다 보니 목 한번 제대로 들수가 있습니까?
떡에 뜨거운 열기 때문에 얼굴은 화끈화끈 달아 오르고 떡을
약간 식혀 잘라야 하기에 물은 얼음장 같이 차가워 손은 꽁꽁
얼 지경이죠....
가끔은....
기계가 너무 과열이 되어 고장이라도 나면 아버진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우왕좌왕...화풀이 대상은 언제나 어머니와 내몫이었죠
그렇게 하루해가 저물면 온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내일을 위해
피곤한 몸으로 새우잠을 자기 일쑤였죠
그래도 몸이 피곤하고 아픈것은 참을수 있는데 가장 예쁘게 보여야할
사춘기 소녀가 온 몸에는 떡을 더덕더덕 붙이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남자 동창을 만날때면 정말 쥐구멍......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죠...
창피함에 잠깐 화장실에 숨었다가 나오는 날엔...
아버지는 고래고래.....내 이름을 부르고.....'에고 망신살'
그렇게 힘들고 아프게 기억될줄 알았던 명절은 나이가 들면서
이젠 돈주고도 살수없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답니다..
몇년을 그렇게 명절이면 바쁘게 지내다가 아버지의 잘못 선 빚보증과
여러가지 사정상 방앗간을 접으신 부모님...
가끔 명절이면 그때가 그립다고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부모님을
뵐때마다 아직도 방앗간에 대한 미련이 많으신 아버지께 철없이
원망만 한거같아 죄송스러워집니다....
이번 명절에도 방앗간에서 떡을 하지않고 포장된 떡을 사서 차례를
지내는 이웃들을 보면서 너무 편하게 명절을 보내는데 익숙해
지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이 솔솔 나는 하얀 가래떡이 그리워 집니다...
방앗간에서만 맛볼수 있는 명절의 웅성거림과 기계소리...그리고
푸근한 인심과 특유의 떡익는 냄새.......
아버지 어머니의 영원한 꿈이신 명절에 대한 추억을 언제나
현실로 돌려 드릴수 있을런지?
꼭 아버지께 방앗간을 찾아 드리겠다는 무언의 약속을 지킬수는
있을런지...
항상 방앗간이 평생직장이라 하셨는데.....
이젠 검은 머리보다 떡가루만큼이나 하얗게 변한 아버지 어머니
머리카락을 보면서 자꾸만 가슴이 아파옵니다......
해마다 명절이면 부모님께 죄송하고 아프게 해드린것만 기억이
납니다....올 명절도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기에 멀리서나마
전화상으로 건강만 빌어 드렸죠...
이래서 딸은 필요없다는건지???
친정은 마음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