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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즐기는 여자


BY 얼그레이 2003-12-29

나만큼 외로움을 즐기는 여자가 또 있을까....
어느새 외로움은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고...이젠 이웃이나 주변의 누군가 더불어 산다는게 오히려 귀찮게 여겨질뿐...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나만의 시간을 상실한 피해의식때문인지 난 그로부터 나혼자만 즐기는 시간을 무척 갈급했던것 같다...
그래서 다들 곤하게 자는 시각이면 졸리운 내몸을 애써 쓰디쓴 커피로 깨우면서까지 새벽의 고요한 시간을 혼자서 즐기곤한다...
이젠 내몸도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서너시간 잠을 청하고도 낮동안의 활동에 큰 무리가 없는걸 보면 예전과는 참 많이도 다른 정말 이상하리만큼 내몸의 변화를 감지한다...
처녀시절에도 잠이 무진장 많았던 나였는데....잠을 자도 자도 끝이 보이질 않았는데...
여자는 아이라는 존재가 생김으로인해 예전의 라이프 스타일을 주저없이 던져버리고....내게 할애했던 시간을 아이에게 아낌없이 줘버린다...
나 역시도 예외없이 그랬다...한치의 의문이나 반감조차 없이....모성애라는 자연스런 본능의 일부인가...
그러나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더불어 욕심을 부려 내 시간을 굳이 갖기위해선 난 두배 세배로 내몸을 튼튼히 하고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
굳이 내몸과 정신이 강해질려고 노력한건 아닌데 아이라는 존재로 인해 자연히 그렇게 변모해버린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엄마는 강하다고 하는가보다...
처녀시절에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던 나.....
내 한몸 간수하기도 힘든 너무도 부실했던 내가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를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늘 갖고 있었는데...
물한모금 마실수 없는 몇달간의 입덧을 끝내고 건강한 사내아이를 자연분만해서 아이가 크게 아프지 않고 잘 키우고 있는 나를 보면 나의 부모로서 울친정엄마가 느끼는것 이상으로 내스스로 내가 참 대견스럽다고 느낄때가 많다...
그리고 난 아이를 낳은후에 처녀시절때보다 더 건강해진 내 체력을 느낀다...
그렇다고 산후조리를 잘한 것도 아닌데....거의 나 혼자서 하다시피했었는데...
그전에 자주 앓던 내 감기도 남편에게 옮아갔는지....남편은 한여름에도 감기를 달고있을때가 있다...
건강은 절대로 자랑하는게 아니라고 했지만...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좋아진건 강해진 체력인것 같다...
결혼전에 나와는 별개라고 생각했던 운동을 꾸준히 해온것도 한 몫을 한것 같다...
처녀시절 그렇게 골골 자주 아팠던것도 운동부족이 원인이었던것 같다....지금 생각해보면....
행여나 내가 아플때 아이와 남편이 넘 귀찮아서 그들을 마다하지 않는 내 강한 몸을 만들기위해서라도 운동은 꼭 필요한것이었다....
또 남들이 다 자는 시각에 나만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야했다...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기가 어디 쉬운일인가....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엔 내가 아이를 따라다니는건지 아이가 나를 따라다니는건지도 모를 정도록 분주하기에 낮동안의 내 시간은 당분간 아이에게 저당이 잡혀있다는걸 감안해야할것이다.....아이가 있는 어떤 엄마에게든 당연지사이지만..
아이로 인해 모든게 분주하고 여유가 사라지는 바람에 어느새 난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도 목말라하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식사시간마저도 나만의 식사시간을 갈급했다...모처럼 남편이 집에 있는 오늘같은 휴일에는 남편과 아이의 식사가 마치면 테이블위에 단아한 매트를 깔고 그위에 나만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한끼의 식사를 비로소 여유있게 할수 있게 된다...
이런 느긋한 식사의 행복도 남편이 아이를 돌볼수 있는 오늘같은 날이여야만 가능할뿐이다...
만약 고요한 밤시간에 즐기는 나만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면 난 벌써 일상의 육아와 가사의 역할자인 엄마와 아내의 자리가 신물이 나서 늘 짜증으로만 일관하는 나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이웃에게도 역시 내시간을 할애하기를 아까워했다...
이곳으로 새로 이사온 나에게 좋은 이웃이 되고픈 이웃여자의 호의조차도 썩 반가워하지 않는 냉냉하고 쌀쌀맞은 여자의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도 갈급한 나머지 이웃이 내 고요한 시간을 행여나 깨뜨리는 불청객쯤으로 생각하는 피해의식으로 가득찬 내모습 ...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중에 이웃이든 누군가에게 더 필요하다고 느끼면 아무런 사심없이 내것을 나눠주는걸 즐기고 좋아하는 나였는데...
이것마저도 이젠 망설여진다....이런 내 행동을 곡해하여 내 생활을 고려하지않고 아무때든지 내집을 노크하는 황당한 일상이 또 벌어질까봐 두려워서일까...
어느선까지 이웃에게 맘문을 연다는게 참 힘든일이다...적어도 내 프라이버시는 침해당하고싶지 않은데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걸 ....
또 다른 이유라면 보통 아줌마들이 걸출하게 즐기는 수다라는 것에 그다지 취미를 못붙인 내 취향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나와는 너무도 반대인 언니는....나와 마찬가지로 언니도 결혼과 더불어 이곳 경기도에서 객지생활을 시작했다....
언니는 낯설은 환경과 사람으로 인해 눈물을 꽤 찔끔거렸다고 한다...
그럴적마다 생긴모습도 다 비슷하고 사용하는 말도 다 똑같은데 울일도 많다면서 언니를 타박하곤 했었다..
반면에 난 어떠했는가!......결혼과 더불어 시작된 새로운 환경에 설레여하고 오히려 즐거워하지 않았던가.....중학교시절부터 시작된 객지생활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부모형제들과 함께 한 시절조차도 아득할정도이다...언니가 결혼해서 눈물을 적시면서까지 느꼈던 외로움따위는 난 나의 중고등학교시절때에 이미 다 뗐다...그 어린나이에 언니가 흘린  눈물보다도 더 많은 눈물을 이미 다 흘렸다...지금 생각하면 베게를 짜면 물이 뚝뚝 흐를정도록 울었던 기억밖에 없다....대학을 졸업하고나서 시작된 영국에서의 타국생활은 더한 외로움으로 나를 단련시켰고 쓰라리게 했었다...
언니는 신혼초에 그런 외로움과 쓸쓸함을 떨쳐버리기위해 가게에 파는 떡을 일부러 사서 이웃에게 돌려 먼저 손을 내밀어 이웃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한번씩 언니집엘 가면 인터폰이 울리는 소리가 늘상 끊이질 않고 언니가 이웃집에 놀러가지 않으면 이웃아줌마가 때를 가리지않고 언니집에 방문하는걸 자주 보곤한다...
언니집근처 할인마트를 언니와 함께 가더라도 마트엔 온통 언니가 아는 사람들만 쫙 깔려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언니는 수다떠는걸 굉장히 좋아한다....그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랑 전화통화를 할때도 삼십분은 기본에 불과하다...
언니는 나에게 '아이랑 단 둘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니? 제부도 늦게 들어오는데' 라고 걱정어린 말투로 자주 묻곤한다...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록 하루가 후딱 지나가는 나에게 심심함을 느낄수만 있다면 오죽 좋으련만....
자기남편이 늦게 들어오는걸 즐기는 나같이 무심한 여자가 또 있을까...
신혼초를 제외하고 늦은 귀가땜에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은 기억이 아득하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자매이지만 참 많이도 다르다...
대학시절을 문득 떠올려본다....늘 삼삼오오 뭉쳐다니는 친구들이 있었지만...난 애써 그들에게서 아웃사이더이기를 자처했다....
그런 내가 그들은 다분히 이해가 가지 않은건 누가봐도 당연한 것이리라...
어떤 무리속에서 즐기는 수다가 나에겐 참을수 없는 아니 별로 즐기고 싶지 않은 묘한 외로움을 가져다 준 경험을 했었기에 애써 그런 자리를 외면했던것 같다...
그런 수다가 끝난후에는 더 참기힘든 묘한 허탈감을 느꼈던 기억들....
그렇다고 수다의 재미를 전혀 못 느낀것 아니다...가끔씩 만나는 아직도 싱글인 대학친구들... 한꺼번에 만나기가 힘들어서 한명씩 만나서 일대일로 수다를 떨때는 하루가 모자랄정도이다...
친구들에게 아이와 남편이 없어서인지 시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수다는 아주 끝장을 보고만다....
아줌마가 아닌 그들에게서 배우고 듣는 무궁무진한 정보따위가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던가...
육아와 가사로 일관된 일상적 대화의 소재거리에 신물이 난 나에게 사회인으로서 그들이 전해주는 메세지는 마치 우체부가 오지에 살고 있는 한 문맹인에게 가져다 주는 귀중한 소식과도 같다...
그런 수다를 떨고나면 육아와 가사로 인해 그동안 쌓였던 내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짐을 느낀다...
그러다가 또 일상으로 돌아오면 난 여전히 외로움을 즐기는 여자가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