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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더 나은 메뉴를 제공한 학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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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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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일 년.


BY 개망초꽃 2003-12-29

장사를 시작한지 일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 매장에 간판을 달아 놓고 광고할 돈이 없어서 전단지만 겨우 만들어 놓고
전단지 배포할 돈이 없어 전단지엔 시린 바람과 먼지만 쌓여갔다.
손님도 없는 매장 안 고적한 바람이 어깨와 다리로 휘감겨서 풀려지지 않을 때
또 다시 막다른 골목이 이런거구나 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가정도 막다른 골목이었고
시멘트로 만든 색깔도 없는 사랑만이 높다란 장벽이 되어
누런 땅도 퍼런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두 아이만이 내 어깨에 매달려 나를 앞으로 걸어가지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살아야했다.
술 팔고 몸파는 일만 빼고 뭔일이든 해야 아이들 입에 편한밥을 넣어줄 수 있고
최소한의 옷과 기본적인 학교를 보낼 수가 있다.
학원은 이미 오래전에 안 보냈고
남들이 하던 분에 넘치는 외식이나 여행은 포기한지 꽤나 되었다.
외식을 할 때는 한달에 한번 바지락 칼국수나 한 판 시키면 두 판을 주던 피자를 사줬고
한창 멋에 민감한 큰 딸아이에겐 오천원하는 티를 사줬고
멋에 둔한 아들에겐 이천원짜리 티를 사줬다.
집앞에 있는 걸어갈 수 있는 호수공원내에 있는 자연학습장 가는 것이
우리 세 식구 여행이라면 여행의 대부분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 전부로 매장을 월세로 얻었고
진열장이나 냉장고나 간판은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나중에 갚기로 했다.
물건은 한달뒤에 결제해 주기로 하고 외상으로 겨우 구색만 갖춰 상품을 진열 했다.

장사를 시작한 뒤 몇 달은 유통기한이 지난거나
시들어 버린 야채나 막변하려고 하는 고기만 갔다 먹었지.
날짜가 안 지난건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지 않았고,
아이들이 제일 먹고 싶어하는 비싼 초코렛 과자는 손도 못대게 했다.

손 끝과 발가락이 시려도 내가 앉는 계산대 밑엔 난로도 준비하지 않았다.
막내 동생이 와서 추위에 발발 떨고 있는 걸 보고 난로를 사가지고 온다고 해도
고집을 부리고 신경질을 내서 못 사게 했다.
난로 살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올까봐 그랬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다가 막내이모가 와서 보더니
"너 참 한심하다.건강해야 장사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지.답답한 기집애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제일 싼 빨간색 작은 난로를 하나로 마트에 가서 끌어 안고 왔다.
발밑에 난로를 키고 앉아 있으면서 진작 살 걸 아둔한 후회를 했다.
그러면서도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올까봐 약하게 조절해 놓고
뜨거운 물을 연실 마시며 냉냉한 겨울을 다독이며 잘 보내주었다.

올 봄, 매장 앞 플라타너스 나무 밑둥에 분홍 뺨을 간직한 패랭이와
하얀 부라우스 입은 마가렛트 꽃을 심었다.
플나타너스 보호대겪인 철망사이로 잡초가 올라오고
난 그 잡초를 더 아끼며 차 끓여 먹던 주전자로 물을 주며 잡초들을 키웠다.
별꽃,달개비,괭이밥,강아지풀,개망초꽃,민들레......
잡초가 싹을 틔우고 꽃을 보여주고 풀잎에도 가을이 머물때쯤 매장엔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나중에 갚기로 한 돈도 다 줬고 물건값도 다달이 밀리지 않고 결제를 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애용해 준 손님들에게 조금이나마 감사의 선물을 주기위해
일주년 기념 사은잔치를 했다.
작년 12월 23일에 매장을 열었던 날의 22일부터 24일까지 삼일동안 세일도 많이 하고
백명정도 손님에게 매출순위로 일등은 사골과 한우고기를 드렸고
백등인 손님에겐 귤한박스까지 준비해서 드렸다.
일등에서 백등까지 순서를 정해 준다는 건 보기에도 안좋고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아서
들꽃 이름을 부쳐 상을 드렸다.
별꽃상,달개비상,강아지풀 상,달맞이꽃상,붓꽃상,민들레상.....
손님들이 예쁘다고 감탄하셨고
재미있다고 웃으셨고
특별하다고 즐거워했고
희안하다고 이런상은 처음이라고 박수를 치시기도 하셨다.
어떤 손님은 요즘 좀 우울했는데 달맞이꽃상을 받아 기분이 환해진다고 하셨다.
강아지풀상? 정말 특이하고 재미있다고 하셨고,
별꽃상을 드렸더니 예쁘게 장사를 하시는군요
그래서 손님이 많아지신 이유가 여기에 있으셨군요 하셨다.

성탄절을 앞두고 년말과 새해를 맞아 손님에게 선물을 주니
나도 특별하고 별난 즐거움이 있었다.
희망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목적도 없는 버스를 타고
어두운 세상의 뒤안길을 지나고나니 자잘한 들꽃이 뒹구는 언덕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뒤돌아 걸어나와 달개비꽃처럼 파란 하늘을 보다.
붓꽃처럼 고귀하고 개성있게 살고 싶었다.주제넘게 나는......
그런데 내 사는 모양은 강아지풀 같다.민들레일지도 모른다.
아무곳에나 자라는 풀꽃인지 모른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잡초라도 좋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내 할 일을 하면된다.
내 주어진 그릇대로 살면된다.
내 주어진 삶대로 살면된다.
장사치가 되면 어떻고 시시껄렁한 글쟁이면 어떻고 이름모를 시인이면 뭐 어떠냐 말이다.
들꽃 하나하나에게도 그들 나름의 계절이 있고 피어나는 시간이 있고
쉽게 만든듯한 이름이 있고 태어나고 죽는 때가 있다.
그걸 쉽고 편하고 비우며 말하자면 팔자고 팔자대로 산다고 한다.

교회에서 문답시간에 진행하시는 분이 질문을 했다.
감명깊에 읽은 책이 뭐냐고
난 솔직하고 짧고 간단하게 말했다.
"법정스님의 책이요."
생활 신조가 뭐냐고 또 묻길래 난 더 탁 까놓고 쉽고 편하게 말했다.
"내 팔자다."

강아지풀은 강아지풀대로
달맞이꽃은 그 꽃 나름대로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르다.
그게 바로 멋들어지게 말해 삶이고 고상하게 표현해 인생이고
무식하고 솔직하게 말해 팔자인 것이다.

매장에 간판을 단지 일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