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빚어 놓은 기암들이 내 눈을 사로 잡는다. 황량한 겨울산... 세필로 섬세하게 그려낸 듯한 한폭의 수묵화 속에는 나목들과 드문드문 소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한계령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구름낀 산자락.. 가까운 곳을 다녀올 요량으로 입고 온 가죽쟈켓이 매섭게 부는 바람에 금방 차가워지며 한기를 더해주고 있다. 멀리 보이는 하늘과 구름... 그리고 기암괴석들을 배경으로 한컷 남기려는 어느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부럽게 또 눈에 들어온다. 예쁘게 보이려는 가족들의 얼굴을 뒤에서 부는 바람은 얄밉게 방해를 하고 만다. 한계령에서 맞는 된바람에 체감온도는 급강하하고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려는 우리들의 눈에 커피자동 판매기는 보이지 않는다. 커피와 설탕 그리고 프림듬뿍 넣은 일명 자판기커피맛이 내겐 최고일 뿐... 커피메니아들이 찾는 레귤러니 에스프레소니 하는 커피는 촌스러운 내 입맛과는 거리가 멀다. 휴게소안에는 그런 것들로 가득하고 두런두런 살펴보다 따뜻하게 뎁혀놓은 캔커피를 하나 사 그것을 품에 안으며 차에 오른다. 따뜻하다... 아...이 따뜻함 비록 작은 캔 하나로 볼을 비비고 손으로 감싸 안으며 그 따뜻함에 만족해 하는 작은 기쁨을 행복이라 말할수 있다면 얼마나 즐겁게 살수 있을까... 큰 것 바라지 않으며 아주 작은 것에라도 감사하며 기뻐할수 있는 마음.. 고통쯤이야 모두에게 주어진 고행이라 생각하며 구비진 고갯길만 넘으면 평지라는 밝은 마음으로 앞날을 내다보며 살수 있는 지혜만 있다면... 인생의 행로.... 옳은 삶의 잣대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할때 '이 것이 삶의 바른 길이요'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바람따라 구름따라 흘러간다 하지 않던가 그렇게 세월속에 내 삶을 맡긴다면 모든 것 잊혀지리라.. 캔커피 하나로 몸을 녹이며 다시 되돌아 가는 길.. 구불구불 올라오면서 메스꺼워 보지 못했던 주변의 정경들.. 햇볕들지 않는 계곡물은 꽁꽁얼어 붙어 있었고 옷을 벗어버린 잡목들 사이로 그나마 산죽(山竹)만이 추워 서로 부대끼며 몸부림치는 푸름으로 색을 보태주고 있었다.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여유로움이 생기기 시작한다.. 2004년이 오고 있다. 웃자 웃자....밝고 환하게 그간 힘들었던 모든 일들일랑 이 한계령에 털어버리고 내려간다. 웃음띤 얼굴....본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자.. 모든 것을 잊어버리라...잊어버리라고 한계령은 내게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