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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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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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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소리 없이 오고 또 가고


BY 용숙 2003-12-27

 

  아련한 내 어린 날의 어머니는 양지 바른 마루 끝에 앉아 신문지를 깔고 손바닥만한 거울을 앞에 놓고 정성스런 손짓으로 당신의 희끗희끗해진 머리에 염색을 하셨습니다.
그 후로도 어머니는 늘 다시 희어지는 머리에 그렇게 염색을 하셨지요.
내가 다 커서 어른 되고 시집을 가도 어머니의 염색은 그렇게 이어지는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팔십이 다 되신 지친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염색을 하지 않으십니다.
  어제는 도저히 더는 두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흰머리를 어떻게든 해결을 해 보려고 화장품 가게에 들렀습니다. 염색약을 사기 위해서요.
아직은...아직은...흰 머리카락을 감추려고 하는 염색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십도 안된 내게 멋 내기 위해서 하는 염색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하는 염색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애써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이제 흰 머리카락이 어떻게든 감추어야 할 만큼 늘어나 벼르던 끝에 그리로 갔습니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서 주인에게 염색약을 물어 보니 내 머리를 올려다보며
“새치가 많으시네요.”
‘..........’
‘말이 좋아 새치지 엄연히 흰머리인 것을....’
‘당신은 새치가 아닌 흰머리요.’ 하고 정확히 찍어서 알려 주는 것 같은 가게 주인의 말에 나는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이 권해 주는 염색약을 사 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비닐을 어깨에 뒤집어쓰고, 비닐 장갑을 끼고 설명서에 씌어진 대로 염색을 시작했습니다.
양지 바른 창가 쪽에 앉아서요.
비위를 건드리는 염색약 냄새가 코를 찔러 왔습니다.
집안에 낯선 냄새가 진동을 하니 큰 아들놈이 나와 쳐다보며 나보다 더 서글픈 얼굴을 하고 서있었습니다.
“엄마가 염색을 하니 슬프니?”
“그럼요... 슬프네요......”
‘.........’
나는 묵묵히 정성스런 손짓으로 구석구석 염색약을 묻혀가며 물을 들였습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했습니다.
까딱 잘 못하다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침을 꿀꺽 삼키니 참을 만 했습니다.
행여 흰 머리카락이 여전할까 싶어 대고 염색약을 바르고 또 발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