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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굽는 여자 (3)


BY 얼그레이 2003-12-27

빵에 들어갈 밀가루가 벌써 바닥이 났다...
밥과 반찬을 만드는 과정보다 더 까다롭고 복잡한 빵을 만드는 일에 난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하고 있다...
아마도 그동안 잠잠하다 싶었던 내 편집증이 또 도진것 같다....
아들을 낳기전엔 남편의 퇴근시간이 되어도 식사준비조차도 잊은채 뜨게질에 완전히 미치더니....
첨으로 집장만을 해서 새집으로 이사를 하고선 온집안의 가구며 액자들을 죄다 하얀색으로 페인트칠을 해서...
한동안 남편과 아들은 역겨운 페인트냄새를 맡아야 하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또 한때는 이태리요리에 또 미쳐서 한동안 식탁엔 느끼한 올리브유가 잔뜩 들어간 음식이 올라와서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또 희생양이 되었다....
다행이 아들은 파스타, 리조또, 라자녜할것없이 이태리음식을 뒤로 꺼벅 넘어갈정도록 좋아한다...
남편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먹었을것이다...내 그 심정 잘 알지....알면서 모른척 했었지...
그때 남편눈치를 살살 봐가며 사다놓은 허브며 이태리요리관련서적이 잔뜩 쌓여있다...
지금의 또 다른 나의 관심사...빵만드는일에 미쳤다...
단단히 미쳤다...
성탄절이라서  모처럼 출근하지않고 집에 있는 남편의 식사는 거하게 차라기는 커녕 대충 챙기고....아들의 식사 역시...
또 빵만들기에 몰입한다...
내가 어떤 것에 깊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데는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남편의 오버가 또 한몫을 한다...
남편은 누군가 옆에서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록 나에게 칭찬을 얼굴 한점 붉히지 않고 잘도 한다...
주로 칭찬하는 레퍼토리는 '당신 어쩜 그렇게 전문가처럼 잘 하는거야'....
때론 이렇게 오버하는 칭찬이 나를 놀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록 과도하다...
하여튼 이런 남편의 과도한 칭찬이 내가 지치지도 않고 한가지에 깊이 몰입하는 원동력이 된것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땀 뻘뻘 흘리며 해놓은 일에 누군가 아무런 생각없이 한마디 툭 던졌으면 난 벌써 그 일을 접었을 것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칭찬을 해주면 더욱 기가 살아서 무슨일에든 의욕이 솟구치는가 보다....
아들녀석이 그 대표적인 예다...식사때면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곤했는데 그 해결책은 칭찬이었다...아들의 입속으로 밥이 한숟가락씩 들어갈때마다 '아이구 잘먹네'라는 말을 아끼지 않고 동시에 손과 팔은 오버액션을 취하면서 연발하는거다...

 

이번 성탄절엔 케익을 생략했다...최근 경기를 감안한 탓일까...
와인 역시...얼마전에 먹다남은 싸구려와인을 대신했다...
아들녀석은 며칠전부터 어설픈 어조로 '깨이크 깨이크'하면서 노래를 부르다시피 했는데....
집에서 그냥 파이와 쿠키를 만들어먹기로 했다...
녀석은 좀 실망을 했을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의 낮풍경은 온통 케익의 물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록 케익은 대목을 맞았다...
과일을 얹은 모양이 죄다 거기서 거기인 생크림케익이 그다지 정이 가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난 아직까지도 남녀노소할것없이 보편적으로 좋아하고 입에 사르르 녹아들어간다는 생크림의 매력을 찾지 못했다...
그것을 손으로 찍어서 탐스럽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볼때마다 늘 이렇게 속으로 의아해했다....
'무슨 맛으로 저걸 먹지.....나는 왜 저 맛을 못 느끼는거지'
빵가게시식코너엔  으례 생크림이 한켠을 차지하고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개 시식용빵보단 그것과 더불어 나오는 생크림을 먹기위해서 멈춘다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록 생크림에 오히려 더 목을 맨다....한번이라도 더 찍어먹기위해서...
나의 경우는 생크림이 들어간 빵을 먹을라치면 생크림만 죄다 걷어내고 먹는다...
체질상 생크림이 안 맞는지 도저히 땡기지가 않는다...
어떤 빵가게엔 바게트빵속에도 생크림을 샌드해서 파는데 도대체 무슨맛을 즐기라고 하는건지 참 궁금하다...
하여튼 나같은 입맛을 가진 사람도 있고 참 가지각색이다....

 

모처럼 파이를 구웠다...
예전에 외국인친구집에 식사초대를 받아서 가면 후식으로 빠지지 않고 늘 나오던 파이의 매력을 전혀 몰랐던난 최근에 와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뜩이나 부른 배에 후식으로 다소 느끼한 감이 있는 파이가 나오면 난 그걸 반도 못 먹고 먹는 시늉만 할때면 괜히 식사를 준비한 이에게 송구함을 금할수 없어서 난감해지곤 했었다....
남기지 않고 잘 먹어주는게 정찬을 베푸는이에게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에....
지금은 파이를 절대로 후식을 목적으로 먹지 않는다...후식으로 먹으면 파이의 매력을 절대로 느끼지 못하기에...
그 매력은 파이위에 얹는 필링에 있기보단 바삭바삭한 파이껍질-크러스트에 있는것 같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모제과회사의 비스킷을 씹는 맛과도 비슷하다...
보통 빵가게엔 케익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파이라고 구경한건 고작 호두파이하나뿐이었다...그것두 미리 주문을 해야 가능하다고 한다....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일까...
파이만큼 다양하게 응용할수 있는 음식도 드물다...필링에 따라 다양한 맛을 즐길수 있다...
전통적인 파이는 영국의 미트파이를 들수 있는데...웬지 엄청 느끼할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이 변형되어서 오늘날 다양한 과일을 얹은 파이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여튼 자주 구워먹을것 같은 생각에 얼마전에 타르트팬을 큰맘먹고 구입했다...
파이는 크게 까다로운 과정이 아닌 재료만 갖추어지면 쉽게 만들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만들어먹는 파이가 훨씬 더 좋다...
타르트는 파이를 프랑스식으로 부른 명칭인데....내가 주로 만드는 파이도 파이틀을 미리 구워놓고 나중에 필링을 얹는 미국식파이라기보단 파이틀과 필링을 함께 굽는 프랑스식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내겐 프랑스식 타르트가 훨씬 나은것 같다...

성탄절엔 레몬크림을 잔뜩 얹은 타르트를 만들었다...
오븐속에 들어간 타르트팬속의 내용물이 부풀어오를때는 베이킹파우더나 이스트가 들어간 일상의 빵들이 부풀어오는것보다 더 흥분되고 설레인다....특별한 날에 먹는거라서 그런가보다...
아들녀석과 함께 오븐에 바짝 다가가서 거의 코를 오븐에 갖다 붙인채 파이가 맛있게 익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놓칠수 없는 또 하나의 흥분되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녀석에겐 새로운 경험이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낮엔 아들녀석과 베란다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두조각이면 딱 좋은 레몬파이와 다즐링의 맛을 즐기면서 성탄절의 아쉬운 여운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