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가 설거지를 한 건 아마 열살 미만이었지 싶다.
쌀뜨물을 잘 모아 두었다가 초벌 설거지를 하고,
그 물은 잘 따라서 돼지 밥으로 남기고, 희뿌연 물만 집 뒤 텃밭으로 휙~ 버리면,
작은 참새들이 포르르 날아 올랐다가, 다시 돌아와 뽀족한 부리로 끄덕끄덕 남은 알갱이를 주워 먹곤 했다.
흙부엌 한 귀퉁이 물독에서 떠낸 한바가지의 물로 아이가 헹구어 낸 그릇들은,
다음 끼니 때엔 설거지 한 꼴이 이게 뭐냐며 늘 어머니의 타박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설거지를 한 시간은 어림잡아도 이십 오년은 족히 되었다.
그러나, 난 아직도 내가 봐도 그리 깔끔하게 설거지를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정말 손에 힘을 주어 팔이 빠지도록 냄비를 밀어도, 반짝 거리며 윤이 나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손은 크기에 비해 힘이 없나보다 했다.
식당을 하고보니, 지난 다섯달 동안 한 설거지 양이 보통 사람 몇년치는 될 것 같다.
워낙 못하는 설거지 실력에 남보다 두배의 힘을 들이고도, 반짝거리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며칠 전, 설거지 아줌마가 내가 철수세미로 빡빡 문질러 대던 냄비를
스폰지 수세미로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철수세미로 힘 다해 문질러도 안지는 그을음이 슥슥 딲이는게 아닌가.
그렇게 반짝이는 남의 냄비가 부러워, 도대체 나는 왜 안되는거냐고
한탄하며, 다른 사람들이 특별한 비법을 가진 줄 알았다.
난생 처음 설거지를 배우는 사람처럼 , 옆에 앉아
"이래도 닦이네!" 감탄을 연발했다.
그 후로 냄비들은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신기해 나는 신나게 수세미를 돌려댄다.
거품과 함께 묻어나오는 시커먼 물이 흘러내리고, 깨끗한 물도 헹구어 내면,
냄비처럼 마음도 반짝 윤이 나는 것 같다.
'요기는 살살 문지르고... 이런데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서 밀고...'
설거지 아줌마의 말을 새기며 냄비를 딲는다,
나는 무작정 철수세미로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힘껏 닦으려 했던 자신을 향해,
어쩌면 남들 다 아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까하여 코웃음이 났다.
혹시 살면서 힘내야 될 부분과 살살 다루어야 할 일을 분간 못하며 산것은 아닌지
돌연 의심스러워 진다.
살살 딲아야할 부분에 철수세미로 자국을 내며 긁어낸 것처럼,
그리하여 정작 힘 다해 딲야할 때 팔이 아파 대충 밀고 만것처럼,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아닌지....
만약 그런거라면, 얼룩진 냄비들을 다시 딲듯이,
내 삶을 다시 닦아내고 싶다.
붉은 고무장갑 낀 손에 쥔 초록색 수세미가 흥겹게 돌아간다.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쏟아내고,
내 손의 적절한 힘조절을 거쳐 다시 깨끗해진 냄비처럼,
내 삶도 강약을 잘 조절하여,
날마다 깨끗하게 딲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