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놀고 들어오래이~ 해 떨어지면, 감기 걸린다. 아가~".
"늑 언니는 찬 바람만 쐐였다허문...감기에 걸린다...아가~막내야..훗딱 들어오그래이~" 겨울이 되면, 늘 귓전에 남는 목소리다.
유난히 허약했던 나는, 동생에게 통 사정을 해, 아버지 몰래 눈 지치러 잠깐, 나가기만 해도, 여지없이 기침을 밤새 해 대는 통에, 우리들의 비밀 공작은 여지없이 들통이 나곤 했었다.
"아가~늑 언니 데리고, 놀러 갔다 왔구만....아이구야~" 거짓말을 할래야 할 여유도 없이, 동생은 내 덕에 늘 야단을 들어야 했고, 아버지는 결국 나를 위해, 창호지 문 한 쪽에, 늘 유리를 끼워 붙여, 밖이 보이게 하는 덧창을 더 넓게 만들어, 구경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그것도 내가 못내 아쉬워 하자, 이누스들의 눈 집을 만들어, 그 안에 솜 이불을 깔아 가끔 내가 밖에 나가 놀 수 있도록 해 주실 때면, 여지없이 어머니의 노기는 아버지를 향했다.
얼마나 솜 이불이 귀했던 시절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를 위해서, 김장용 큰 다라이에 새끼줄을 묶어, 나를 그 안에 앉히고, 머풀러로 눈만 겨우 보이게 나를 둘둘 동여매서, 바람 한점 세어들지 못하게 한 다음, 다라이를 끌어 주시 곤 했었다.
눈 사람을 만들고, 눈 썰매를 서로 끌어주며 노는, 동네 친구들과, 오빠, 동생을 보면서, 부러운 나는, 좀더 가까이 보려고, 나도 몰래 몸을 바짝 앞으로 당길라치면, 유리창에 이마를 쾅 부딪는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시면서, 당신 이마가 부짇친 것 처럼, 눈살을 찌푸리시면서, 너털 웃음만 지으셨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가마솥 중에서 가장 큰, 가마 솥이 걸린, 안 방으로 통하는 아궁이에 장작 불을 지피고, 그 장작불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어두운 터널로 깊숙히 치닫기를 얼마나, 수수 단 으로 마람을 엮어 만든, 고구마 둥우리가 뜨거워 지기 시작하고, 울 목에 찬기가 가시기 시작하면, 장작 불은, 불은 석류 빛 의 숯 불이 되었다.
숯 불 을 화로에 옮겨 담아, 장갑을 낀 손으로 안 방으로 들고 들어 오시면, 우리들은, 어느새 아버지 주위에 빙 둘러 앉아, 도마 위 에 놓여진 부엌 칼을 보고, 수수단으로 둘러쳐진, 고구마 둥우리 옆에 작게 난, 창으로 손을 쑥 밀어 넣어서, 방긋 웃으시면서...."어디보자~ 어떤게 제일 맛있을까?잉~"하시며, 골라 낸 고구마를 얇지도, 두껍지도 않게 썰어, 화롯불 위에 놓인, 석쇠 위에 고구마를 얹어 놓기 시작하고, 익기 시작하는 고구마는, 오빠가 젖가락으로 뒤 집고, 아버지는 옛날 이야기를 시작 하시면서, 고구마를 계속 썰어 주셨다.
하나가 익으면, 늘 내가 먼저 먹고, 그 다음 으로 동생이 먹는다. 밖에서 놀이를 못하는 나에 대한 아버지의 특별한 배려였다. 우리들은, 먹이를 기다리는 작은 아기 새들 처럼, 그렇게 달궁달궁, 익은 고구마를 손에 쥐고, 다람쥐가 밤 톨을 먹듯이, 소중이 들고 먹노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입 가상 자리에 검댕이 묻어,우수꽝 스러운 얼굴이 되곤 했다. 챨리 체플린을 연상케하는 구렛나루 수염처럼, 때로는 코 끝에 여기 저기 검댕이 묻어 고양이 얼굴처럼 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느라,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는 잠시 뒷전이 되고, 그래도 아버지는 중국의 한신 장군 이야기며, 장자 이야기들을, 시조 읇조리 듯이 끊지 않으시고, 우리가 웃는다고, 뭐라 한 마디 안 하시고, 빙그레 웃어가며, 계속하셨다. 우리들은, 아버지에 대한 예절을 지키기 위해 아무리 웃음을 참으려 애를 써도, 한 사람이 파안대소를 터트리면, 참을 수 없는 것이 웃음이질 안던가?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은, 화롯 불 위 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고구마 구이 처럼, 아주 느리게 전달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들려 주셨던, 그 옛날 이야기들은, 모두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던, 위인들의 이야기 였음을 알았고, 넉넉하지 안던 살림에, 밥으로 끼니를 채우지 못하고, 고구마를 먹으라 하면, 얼마나 비참했겠는가? 아버지의 재미난 군고구마 구이는 우리가 저녁 상을 받을 때 즈음, 이미 우리 배를 두둑히 채워,늘 밥 상에서 우리는 단, 한 번도 배가 고파 본 적이 없었다. 그런 현명함도, 뒤 늦게 깨달았고, 지금 나는 고구마를 옛 추억을 더듬으며, 가 끔 산다.
화롯 불이 아닌, 찜 통에 넣고, 쪄먹어 보려고.
지척에 있으면, 그리움도 없다. 지금이라도, 전라도 내 고향 집에서 아버지가 고구마 구우신다면, 밤 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먹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