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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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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Point


BY kimunbi 2003-12-09

4. 러브포인트!

사랑이라하면 고상한 것만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랑은 결코 어느 일부분의 범위안에 잡아 넣을 수 없는 것은 아닌 듯 싶다. 아가페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고 에로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경향은 재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세상은 넓은 의미로 바라보면 사랑이 아닌게 하나도 없다. 우주만물이 창조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피조물에게 내재되어 있었으므로 사랑은 모두에게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두가 음과 양으로 이루어졌으며 음양이 사랑일진대 세상은 다 사랑이라 할수 있다.

살았다고 생각하는 생물에게 음과 양이 있고, 그렇지 않은 무생물에게도 음과 양이 있다면 우주의 근본은 사랑이며 사랑안에 모두 있는 것이고 모든 섭리와 진동과 움직임과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사랑으로부터라는 관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태초의 아담과 하와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사람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도 맘에드는 이성을 만나면 반가웁기가 그지 없는데, 온 땅에 다른 사람이라곤 없는 에덴동산에서의 두사람은 얼마나 애틋한 사랑을 나누었을까...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 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2:23)』얼마나 사랑스러운 표현인가. 인류 최초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을 우리는 이 기록으로 볼 수 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들의 사랑이 오늘 우리의 사랑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심각한 사랑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고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상대에 대하여 고백하기 보다는 나의 욕심을 채우는 대상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에 중대한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우리가 이렇게 사랑행위에 대해서 위기감을 느낀적은 없었지 않은가. 에덴에서부터 파괴되어온 사랑의 모습들이 이제는 실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아니될 그런 상황까지 와 있는 급박한 현실이다.

사랑은 고고한 사람들의 표현대로 숭고하고 거룩한 교제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음이 중요하다고들 말은 하지만 아무리 마음으로 사랑한다 하더라도 흙으로 빚은 육신적인 면도 부인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은 영혼과 육신의 합쳐져 함께 이루는 것이지 결코 아담과 이브가 영혼의 사랑만으로 인류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화를 이루는 사랑은 영혼과 육신이 서로를 갈구하는 가운데 따듯하므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리라.

갈빗대로 만든 하와는 육신이었다. 그 육신에 대하여 사랑스런 고백을 하고 있으며 영혼도 사랑했겠지만 오직 영혼의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희귀의 주장은 용납할 수 없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까

사랑의 생각 모두와 그에 수반되는 사랑의 행위 모두가 사랑이지 어느 일부분만이 사랑이라 말할 수 없기에 아담과 하와의 사랑의 결정체인 가인과 아벨에 대해 생각하면서 두 사람의 성격과 그들의 결과는 왜 그랬을까를 곰곰 억측일지 모르지만 추상해 보았다.

엉뚱한 발상인지는 몰라도 내게 다가온 것은 두사람을 잉태하기 위한 그 원인행위에서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기도 중에 얻은 생각은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였고, 아마도 가인과 아벨의 본성은 이미 아담과 하와가 사랑을 나누는 순간 이미 형성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 나눔은 원인 행위이다. 가인을 위한 사랑의 행위를 하기전 아담과 하와는 마음이 혼돈상태였지 않을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나뭇잎 옷을 입고 방황하는 그들의 굶주린 공포의 상태에서 그들은 사랑을 나누었고 그 결과 가인이 잉태되지 않았을까..

이런 발칙한 상상은 내 혼자 스스로 해보는 것이지만,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4:1)』

동침할 때의 마음의 상태가 바로 가인의 정서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두사람의 동침의 순간에 경건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죄의식으로 인하여 순전하지 못한 사랑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뱀에 대한 연민을 가졌던 하와가 부정한 생각을 했든지..

복락원을 잃어버린 슬픔으로 마음이 심히 애통하여 실망하였거나, 뱀에 속았다는 분노가 있었다든지 그러한 부정적인 상태에서 그들이 동침하여 가인을 낳지 않았을까 하는 연상을 해보는 것이다.

원인행위가 바르지 못한 가인은 점점 자라면서 포악하여 하나님에 대해 반항아적인 모습을 보이며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야 할 하나님께 증오의 마음을 가지고 대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 아닐까...

『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
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라고 가인은 하나님께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내면에는 가인의 인간성을 형성할 때의 처음인 아담과 하와의 사랑을 나눈 순간의 감정과 환경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보면서 정말 원인 없는 결과가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아벨은 착하고 하나님께 순종한 사랑의 사람이었음을 본다. 그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신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뜻을 잘읽은 사람으로 보여지는데 그것은 아마도 아담과 하와의 사랑행위 당시는 아담과 하와가 깊이 회개하였던 시기가 아닐까하는 혼자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듯 우리 인류는 물론 창조의 모든 피조물의 원리는 씨의 심기는 순간이 중요함이다. 심는대로 가두는 법칙은 하나님의 법칙이다. 만물의 철칙이다. 콩을 심은면 콩이 나고 다른 것이 날 수 없다. 경건을 심으면 거룩함이 열매 맺는다.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근본의 씨를 번복하여 아주 다른 것이 날 수는 없는 것임을 본다면 씨를 심는 순간 즉,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실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여 원인행위를 무절제하게 하고도 좋은 결과를 바라는 사람들은 돌아보아 정리하여야 하지않을까

성경에는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내용이 성스럽지 못하든 아니든 러브스토리를 읽어보라. 그리고 사랑을 나누는 그 순간이 정결하냐 아니면 피폐한 상태에서 사랑을 나누었느냐를 관심있게 살펴보라 원인행위가 어떻게 결과로 나타나는지 염두에 두어보라.

원인없는 결과가 없듯
사랑을 심는 순간을 대수롭게 생각한다면 결코 이미 뿌려진 씨의 성분을 돌이키기에는 너무도 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함을 우리는 얼른 깨달아야 할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