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횟집의 하루 장사 준비는 미나리 다듬기, 대파까기, 무썰기와 같은
야채 다듬기로 시작된다.
며칠 전, 늘 하던대로 미나리를 다듬다, 뿌리만 남은 미나리를
500cc 생맥주 잔에 꽂아 놓고 물을 채워 두었다.
오늘 아침, 앞치마 끈을 묶으며 보니, 주방 한귀퉁이 냉장고 위에 밤새 놓여 있던 잔에는
잘리운 미나리 줄기 위로, 삐죽이 새순이 나와 있다.
바쁜 점심 시간을 보내고 한가로와져,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미나리는
아침에 본 것보다 더 많이 자란듯 보였다.
게다가 남쪽으로 난 창을 향해,
손가락 두마디쯤 자란 연초록의 미나리 싹들이 일제히 기울어져 있다.
날이 저물어 다시 보니, 창을 향해 있던 미나리가 다시 꼿꼿해진게,
그새 더 자란듯 보였다.
해가 지고 어두워 지자, 주방 안의 형광등 불빛을 바라보기로 작정했나보다.
식물이 빛을 향해 자란다는 사실을 처음 아는 양, 신기하기만 하다.
미나리가 자라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니, 눈이 자꾸 미나리에게로 간다.
부침개를 부치다가도 바라보고, 매운탕을 끓이다가도 쳐다보고....
자꾸 보다보면 쑥 자라는 순간이나, 잎이 벌어지는 순간을 보게 될 것만 같다.
미나리를 담고 있는 '하이트 生'이 새겨진 잔 안에, 흰 실타래 같은 뿌리는
끊임 없이 가느다란 물관으로 물을 끌어 올리고 있을 것이다.
자연 책에 그려진 그림의 화살표들처럼,
미세한 잎맥을 따라 뾰족한 잎 끝으로 운반 되는 물과
잎이 간절히 쫓고 있는 그 빛을 더해 미나리는 광합성을 하고,
그 광합성은 줄기를 자라게 하고 잎을 피우는 에너지를 만든다.
'生'이란 글자가 미나리 같다.
줄기와 저 여린 미나리 잎이 자라는 게 生인가 보다.
문자가 없던 시대에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들을 구분하여 이름 지을 때,
살아 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까......
살아 있는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들과 무엇이 다를까.....하고 고민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나날이 자라는 저 나무들과 풀, 혹은 미나리와 같은 거라
느낀 것은 아닐까.
순간순간 자라는 미나리와 같이,
산다는 것은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미나리가 빛을 향해 자라나 성장에너지를 만들어 내듯이,
우리도 원하는 것을 향해 끊임 없이 뻗어 나가려 열망해야
삶을 이끌어 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에너지가 있어야 生은 生인 것이다.
미나리가 냉장고 모터 소리에 부르르 떤다.
미나리 떨리는 소리에 멍하니 보던 나도 떨린다.
나도 미나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