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셋...넷....
죽음도 숫자 세듯 차례가 있는 것일까..
요즘들어 윗 어른들께서 하나 둘 예고없이 세상을 떠나신다.
큰아버지네가 돌아 가시고 큰외삼촌네도 돌아 가시고..
태어남은 열달이라는 예정일을 사이에 두고 태어 나건만,
죽음이란 놈은 예정일 없이 나타나는 버릇없고 아주 무례한 녀석이다.
카메라 후레쉬마냥 눈깜짝 할 찰나에 오고 가는 죽음은 미세한 시계 초침사이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영혼의 세계로 떠난다.
나 어렸을 적.. 막연하게 죽음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숨을 못 쉬는게 죽음일 거야.. 한번 숨을 멈춰 볼까..
천천히 숨을 들어 마시곤 순간 숨쉬기를 멈춰본다.
금방이라도 숨이 막혀 가슴이 터질 것만 같다.
아.. 이렇게 죽는건가 봐.. 너무 무서워..
이렇게 답답하게 죽고나면 다시 어둡고 답답한 땅속에 묻히겠지..
그것도 너무 무서워..
철없는 난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이젠 죽음보다는 땅속에 묻힘을 더 더욱 두려워 했었다
그렇게 철없던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이젠 죽음을 조금은 인정하게 되고 겸허하게 받아 들이려는 마음도 순간.
가까운 친치들이 하나 둘 소리없이 떠날때면 가슴 한구석에서 겨울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60.70대 죽음 앞에선 애써 슬픔을 위로 하려는 듯 호상이라고들 말할까.
나 역시도 그래 호상이야..라고 말하면서 순간 죽음앞에서 차가운 차별대우를 느껴본다.
물론 생을 다 살지 못한 기막힌 죽음 앞에선 그리 말할 수도 있겠지만 죽음은 똑같은 죽음이거늘.. 어찌 호상이라 하는지..
그 오래전 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며칠 전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도 난 또 그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나도 훗날 내 나이 70 넘어서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 자식들도
나의 죽음을 호상이라며 슬픔을 애써 가볍게 위로 받으려 할까?
난 아직도 나의 죽음 앞에서 모두가 슬퍼하길 바라는 속좁은 여인네가 분명 맞다.
요즘들어 주변에서 어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등지고 가시는 모습을 바라 보면서 부모님은 마음이 많이 울적하신 모양이다.
한세대를 힘겹게 사시며 공유하던 분들이기에.. 엄마는 내년에 가묘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신다.
난 아직 미래의 죽음마저도 인정하고 싶지 않건만... 마치 밀린 숙제하듯 말씀하시는 엄마가 괜시리 밉다.
"그런 소리하지마엄마..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는거다뭐!!"
엄마 아버지의 죽음을 애써 부정하고 싶은 철없는 큰딸이 괜시리 엄마의 말에 톡 쏘아 붙인다.
지금 이렇게 내 눈앞에 멀쩡히 살아계시는데 왜 땅속에 갇힐 준비를 하는 거냐구..
왜 벌써 떠날 준비를 하는 거냐구.. 요즘 60,70대는 노인네 측에도 못낀단 말야..
내가 아직은 젊기에 남들의 죽음을 멀리 느끼듯 반면 내일 모레면 70 이 되실 부모님은 남들의 죽음이 너무나 가깝게 느끼시는 거겠지..
그 차이겠지..
"60청춘! 60청춘!!"
이렇게 외치는 철없는 큰딸 눈에도 사실은 언젠가부터 내 엄마 아버지가
너무 작게 보여서.. 너무 약해 보여서..
실은 무척 속상해 하고 있음이다.
그렇게 소리없이 우리 아버지의 세대가 추억 속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이다.
하나...둘... 셋...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