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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토로한 A씨의 사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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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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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틀렸어.


BY 레드와인 2003-11-10

"딩딩딩 동동동"   

"엄마 빨리 문열어"

땀에 흠뻑 젖은 아이는 싱글벙글이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엄마 나 몇 개 틀렸게?"

아이가 왜 이렇게 싱글벙글인가 했더니 시험 점수가 나온 모양이었다.

한껏 기분이 올라간 아이따라 한마디.

"다 맞았니?"

순간 엄마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아이의 얼굴에선 그 붉던 복사빛 웃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내 가슴에도 서늘한 한 줄기 바람 지나고 있었기에 또다시 한마디

"그럼 도대체 몇 개야? "

"엄마, 나 여섯개 틀렸어. 수학 세개,국어 한개,사회 한개,음악 한개......"

아이는 좀전의 푸릇한 목소리가 아니라 세상 몇 십년 쯤 산 제 엄마의 목소리로 점수를 늘어 놓는다.

형편없이 망친 수학 점수에, 그리고 아깝게 하나씩 놓친 것들에 대한 다그침이 끝날 무렵에야 아이의 웃음이 떠올랐다.

"근데 너 아깐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어? 너 점수 별로 잘나온 것도 아닌데"

아이의 말은 그랬다. 이번 시험은 엄마가 감기로 고생을 해서 저 스스로  했고 그리고 1학기엔 사회를 많이 틀렸는데 이번엔 한 개 밖에 틀리지 않아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그랬다. 이번 시험은 순전히 저 혼자 한 거 였다. 지독한 감기 몸살에 시달리던 난  제대로 봐 줄 수가 없었다. 혼자 참고서와 문제집을 들춰가며 공부하는 아이를 얼마나 대견해 했던가?

또 사회 공부 한다며 두 눈 꾹 감고 왜 우는 모습에 가슴 뿌듯한 웃음을 짓기도 했었는데....

 난 정말 구제불능의 이 땅의 엄마일까?

겨우 11살의 아이가 느꼈던 작은 성취감조차도 인정해 줄 수 없는 서른 일곱의 엄마가 이 땅엔 얼마나 많을까? 아이에게 순간 너무 미안했고 그리고 고마워졌다. 나 같은 엄마 아래서 바르게 자라준 것이.

"엄마 많이 밉겠다? "

"응, 근데 엄마. 나도 등수도 내려가고 수학도 못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지난번에 엄마가 스스로 하는게 제일 좋은거랬잖아. 그래서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데 엄만 왜 화났어?"

초등학교부터 공부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만은 그런 엄마되지 말자고 수도 없이 되뇌었는데 왜 시험이 끝나고 나면 그 후유증들은 없어지질 않는걸까?

아픈 엄마곁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엎드려누워 문제를 풀던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잊게한 엄마의 부질없는 욕심에 허탈해 하던 중에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

"엄마, 엄마랑 공부하는 것보다 혼자 하니까 더 재미있어.다음엔 더 열심히 할께요."

아! 그랬다. 이제 아이는 공부의 즐거움을 알았다. 채근하는 엄마가 옆에 없고서야 그 오묘한(?) 진리를 깨친 것이다. 시험이면 초등학생이라도 책상앞에 끌어다 놓아야 하는 부모님들 한 번 쯤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줘 보심이 어떨지.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는 사실을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을듯 한데....

이렇게 엄마의 반성이 마무리지어질 때쯤 걸려온 한 통의 전화

"......"

"아빠 , 나 오늘 점수 나왔는데 여섯개 틀렸어요. 아빠 나 잘했지?"

뒤이어 받은 내게 남편이 던진 한마디

"이번 시험 쉬웠다며. 누구네 애는 5학년인데 다 맞았다는데?"

"난 우리애 믿어. 혼자서 그 만큼 잘한게 얼마나 기특해. 그리고 점수 좀 못나오면 어때. 우리 아들로 잘 자라 주는 것만 해도 고맙지. 끊어요"

황당해하는 남편의 목소릴 뒤로 하며 아이에게 길고도 긴 뽀뽀를 했다. 아주 아주 오랬동안 아이를 으스러지게 끌어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