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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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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도시락의 낭만을 아시나요


BY 미금호 2003-10-30

날씨가 추워지면서 두딸아이들의 도시락을 보온 도시락으로 바꾸어 쌌다

뜨거운 물까지 넣어서 마무리해 들려주며

단발 머리에 교복과 검은 스타킹을 신고 바쁘게

골목길을 뛰어 나가는 아이들을 보내고 돌아서며

어느새 내 자신은 열여섯살의  흰카라의 교복을 입은

단발 머리의 여고생이 되어서 다 낡은 책상 앞에 앉아있다

교단  칠판 앞에는 돗수 높은 안경을 콧등의 반에 걸친

키 작은 수학 선생님의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칠판 가득히 나열되어 있고

초겨울의 바람에 굴절된 햇살은 창문 밖에서

조심스레 교실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금전 첫째 시간 까지  겨우 피운 조개탄 난로에서는

이제서야 서서히 화력이 나기 시작했으므로  난로가에 앉은

아이들의 얼굴은 붉으스레 익기 시작한다

따라서 선생님의 큰 도시락(노란색)이 맨 밑에 깔리고

그 다음부턴 학교에 오는 순서대로 우리들의 민생고 해결책인

양은 도시락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가운데는 노란 큰 주전자가 자리잡고 가상 자리로

우리들의 도시락들이 여러 겹겹으로 올려놓고 또 올리고  탑처럼 올라간다

그러면 난로 옆의 아이들은 간간이 맨 밑의 도시락을  위로 올리는

즉 바꿔놓기를 당번처럼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철저히 해 내야 한다

만약 태우거나 하는 날에는 밥임자에게 추궁을 면치 못하는 동시에

그 다음 날부터 따뜻한 자리를 박탈 당하기 십상이다

우리는 그 일들을 말없이 잘해 냈고  선생님 또한

떠들거나 장난치는 아이에겐 가차없이 분필을 날렸어도

도시락을 갈아주는 아이는 봐 주셨다

왜냐면 선생님 밥도 여기에 있으므로....

첫째시간 둘째시간 까지는 아무변화없이  잘 지나간다

세째시간쯤 되면 밥이 눌어붙는 구수한 냄새로 위시하여

시큼한 김치익는 냄새 고추장 보글거리는 냄새  계란타는 냄새 하며

온갖 음식냄새가 교실에 진동을 한다

다 알다시피 그 당시엔 양은 도시락 반찬통이 밥옆에 칸이나

조그만 통을 집어넣게 되어있었으므로  자연히 밥을 덮히는

과정에서는 밥찬도 익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선생님 애들 할것없이  자기도시락 챙겨가기 바쁘다

그리고 우리 몇몇은 반찬을 밥에다 쏟아 붓고는

교복치마로 도시락을 싸서 잡고 흔들며

교실을 한바퀴돌아다니며  즉 부자집 아이들을 찿아 

일종의 수금을 한다 ( 좀 못됏나???)

예를 들어 계란 말이  멸치볶음 같은 고급 반찬들을 찿아 헤메이기도 하면서

별별 지저분한 얘기를 다 해가면서  한바퀴 돌아 내자리에 돌아 왔을때는

도시락의 밥은 너무나 잘 비벼진 비빔밥이 되어잇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로 조금의 누룽지를 긁어

난로위의 노란 주전자의 슬슬 끓는 물을 부어 마시면

어디 요즘의 커피맛에 비하랴....

이때 갑자기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우린  함성을 지르며

운동장으로 뛰어나간다

그렇게 눈송이를 입으로 받아 먹으며

우리들의 황금같은 청춘을 가슴으로 마시며

어느새 내나이 중년으로 와 섰다

이제 그 세월을 어디에서 찿을까

얼음처럼 투명한 그 꿈을 어디에서 볼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 세대는 이런 낭만이 있었다

노란 양은 도시락의 아름다운 젊음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프라스틱 도시락과 집에서 이미 끓인 물과

뜨거운 밥을 보온 도시락에 담아와서 언제나 뜨겁게 먹을수 있고

단체 급식으로 똑같은 밥을 먹으니  어떻게 그런 재미가 있을수 있을까

또한 가스 히타로 난로를 대신하지 않는가

하긴 훗날 그네들의 낭만도 또 이시대에 맞게 만들어 갈테지

이렇게 하루하루 추워지면

그 교실의 연탄내 풀풀 나던 난로와

그 위에 앉아있던 노란 주전자와 노란 양은 도시락이

손짓하듯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