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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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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가지 기억-라면


BY 개망초꽃 2003-09-29

왕십리 시장통에서 우리 삼남매는 자랐다.
노점상을 하시는 엄마는 새벽에 나가셨다가 밤늦게 들어오셨고
나와 남동생 둘은 새벽에 차려 놓고 가신 밥상에 쭈그리고 앉아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학교에 가고
저녁엔 그 상에서 라면을 끓여 찬밥 한덩이씩 말아서 또 한끼를 해결했다.

라면 하나로 셋이 나누어 먹어야 겠기에
노랑색이 벗겨진 누런 양은 냄비에
소독냄새가 펄펄나는 수돗물을 충분히 담고 흐멀건 라면을 끓여서
양은으로 만든 양은 상 한가운데에 못 쓰는 책을 놓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
스텐레스 그릇을 각자 들고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동생들이 착하고 먹는데 그리 욕심을 내지 않아서 그랬는지
우린 아무리 적은 양의 음식이라도 서로 싸우지 않고 나눠 먹었다.

라면이 허옇게 목욕을 해도 서로 비슷하게 휘휘~~건져냈고
국물도 똑같이 한국자씩 한국자씩 퍼갔고
밥도 한숟가락씩 한숟가락씩 덜어서 말아 먹었다.
착한 동생들이었다.
큰동생은 입맛이 까탈스럽고 맛있는 것만 잘 먹었지만
누나에게나 동생에게는 자기 입맛에 맛는 음식이 조금밖이 없어도 더 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막내동생은 고집이 세고 아무거나 잘 먹었지만
누나나 형이 먼저 먹을 때까지
눈꼬리가 괘나 올라간 눈을 껌벅이며 참고 기다리던 순둥이 동생이었다.

엄마는 왕십리 시장에서 별 장사를 다 하셨다.
여름엔 냉차 장사를 하셨는데
라면상자만한 얼음 한덩어리를 사셔서
유리잔에 잘 맞게 송곳으로 얼음을 적당히 잘랐는데
그렇게 자른건 지금까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작게 자르면 금방 녹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빨간 플라스틱 통에 미수가루를 한가득 미리 타 놓으셨다가
유리잔에 얼음을 꼭 맞게 두어개 넣은 다음
손잡이가 긴, 손잡이에 때국이 낀 빨간 국자로 골고루 섞어서 유리컵에 채워
둥그런 양은 쟁반에 예닐곱컵쯤 담아서

시장 구석구석을 "냉차요.냉차~~"소리치며 다니셨다.
얼음이 녹을까봐 가만히 있어도 땀이흐르는 여름날
뛰다시피 장사를 하시는 엄마 모습을 보는날이면
괜히 실경질이 나서 집에 들어와 착한동생들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가을엔 냉차가 담겼던 쟁반에 사탕을 담아서 파셨다.
탁구공만한 색색의 사탕에 하얀 설탕이 오돌두둘 붙어 있던 사탕이었는데
입안 왼쪽에 넣으면 오른쪽으로 옮길수 없을 정도로 커서
손바닥에 밷어서 오른쪽에 넣었다 왼쪽에 넣었다하며 아껴 먹었는데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엄마가 사탕장사를 오래도록 했으면 하고 바랬었다.

겨울엔 호떡 장사를 하셨다.
고무 다라이에 밀가루 반죽을 해서 뜨듯한 방에 놓았다가
흙설탕에 땅콩가루를 섞어서 연탄 화덕위에 둥근 판을 덮어 뜨겁게 달군 뒤
씨꺼먼 기름붓으로 기름을 골고루 묻혀서 호떡을 노릿하게 지져냈다.
맨처음 호떡장사를 할 땐 설탕물이 줄줄 흐르는 호떡이 먹고 싶어 밤잠을 안자고 기다렸는데
겨울내내 먹다보니 나중엔 질려서 호떡굽는 기름냄새도 맡기 싫었다.

엄마는 안해본 장사가 없으셨다.
대공원 앞에서 떡장사.후루릭 바람이 들어갔다 삐리릭 소리가나며 말리는 장난감장사.
졸업식때는 학교앞에서 꽃다발장사.파다닥 튀어 오르던 민물새우 장사.

이리저리 바꾸시다가 나중에까지 제일 오래하신 장사가 과일장사였다.

어떤 장사를 하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해야 겨우 밥을 굶지 않아서
우리 삼남매는 허구헌날 라면을 끓여 찬밥을 말아 먹었다.

맛이 없었다.
허멀건 국물에 식은 찬밥을 말아 반찬도 없이 먹어서 맛이 없었고,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식탐이 없어서 그랬는지 난 라면이 하나도 안 맛있었다.

아......있었다.
라면이 맛있었던적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전 실습생으로 직장을 다녔었다.
사진을 만드는 회사 관리실에 입사를 해서 이교대로 야근까지 하면서 열심히 다녔는데
그때 같이 실습생이로 들어온 상고 남학생의 친구가 나를 좋아했다.
툭하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회사앞에서 친구를 핑계삼아 나를 기다렸는데
걸핏하면 그 신경질나는 라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난 속으로 대답할 가치도 없다며 말도 안하고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어느절에 버스에 낼름 올라타서는 또 라면을 먹으러 가자고 장난치듯 보채듯 했다.

우쨌든 일이 이상하게 되어서 그 친구랑 친해지고 드디어 라면을 먹으로 갔는데,
떡을 넣은 라면을 시켰는데 왜그리 빈티나게 맛있던지......
우린 이렇게 라면 친구가 되어 툭하면 계란 라면, 걸핏하면 떡라면,

어찌하다보면 그냥라면......

근데 이 친구과 몇달 만나다보니 슬슬 남자의 본성이 들어나서는 데이트라나 뭐라나.
암튼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테이트가 뭐냐고 물었더니 팔짱을 끼는거라나 뭐라나......
난 못되게 그랬다.
"난 널 친구 이상으로 생각한적 없어.우리 그만 만나자."

그러고선 피해 다녔다.
더 대답한 필요성도 없다며 말도 안하고,

아무리 불러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뒤도 안돌아 봤다.
집앞에서 기다려도 흥~~하며 집으로 쏙 들어갔고
회사로 전화를 해도 전화 하지마 하고 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이 친구는 마지막으로 잠깐만 이야기하자며

아주아주 심각한 표정을 만들더니만
"나 얼마 못살어.그때까지 내 곁에있어주면 안되겠니?"
"......"
"불치병이야 일년을 살지 이년을 살지 몰라,"
"정말이야? 무슨병인데?"
"있어...... 못고치는 병."
"백혈병?" 그때 당시는 불치병이란 것은 백혈병밖에 몰랐었다.
"부모님도 몰라 충격받으실까봐 말 안했어."
이 친구는 삼대독자였다.줄줄이 누나에 밑으로 여동생만 둘이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죽을 때까지만 내 곁에 있어줘."
난 아무말도 못했다.죽는다는데 안 만난다는 말도 못하고 어쩌겠는가.
아무리 독해도 아무리 싫어도 옆에 있어 줘야지 방법이 없었다.
난 다시 이 친구를 만나서 라면도 먹고 음악 다방도 가고 빵집도 가고
이 친구의 친구들이랑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갔다.
이렇게 일년이 되어가도 이 친구는 직장도 잘 다니고 라면도 잘 먹고 혈색도 좋고
여행도 잘 다니고 보통사람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분명했다.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날 속인거였다.
얼마나 약이 오르는지 당장 만나자고 했다.이 친구는 태연하게 라면을 먹으러 가잔다.
좋다.일단은 라면집에 들어가서는 난 속이 안좋아 안먹는다 했더니
이 친구는 떡라면을 시켰다. 그래 시켜라.
후후~~후루룩~~쩝쩝쩝 먹는데 왜 그리 꼴보기 싫고 얄밉고 열이 확 나던지
더 이상은 못참고 라면 먹는 얼굴에다 대고
"너 왜 안 죽니?"
라면을  젖가락으로 집어 왼쪽에 들고 있던 숟가락에 가지런히 올리고
그 위에 떡을 하나 얹어서 입으로 막 들어가려다나 멈칫했다.
"왜 일년이 다 되도록 안죽느냐고?"
그러곤 라면집 문을 있는 힘껏 드륵 열고, 타닥 닫고는 훽훽훽 팔을 저어 집으로 왔다.

그 뒤 이 친구는 삼년동안 내가 이사가면 이사가는 곳으로 편지를 보냈고
회사를 옮기면 회사로 계속 연락을 했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도 지쳐서 나를 포기하고 말았다.
여자친구를 만나도 내 얼굴이 떠오르고 맛있는 걸 먹어도 내가 보고싶고
여행을 가도 나랑 같이 왔으면 한다고 하더니
나의 무관심과 냉담함과 도도함에 지쳐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난 지금도 라면을 그리 썩 좋아하지 않는다.
멀건 국물의 라면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고
라면을 끓여 파는 식당도 갈일이 거의 없다.
근데 가끔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떡을 넣으면 라면속에 있는 떡이 쫀득쫀득하고,
겨울밤 출출할 때 딸아이와 밀린 얘기를 하며 먹는 라면 맛은 정말 괜찮다.

가난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 싫은 왕십리 시장통도
자신의 목숨을 저당잡혀서까지 나를 좋아했던 그 친구도
내 추억의 가슴에 착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