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아영이 아빠가 대하 먹으러 가자는데.... " 남편이 며칠전 난데없이 한마디 했다.
" 글쎄.. " 재수생 명곤이도 걸리고 초등학생들도 걸리고 그렇지만 맨날 집에만 있었으니까 훌쩍 놀러가고도 싶고 싱숭생숭했다.
어저께 시댁에 갔을때 은근히 대하 어쩌구 얘기했더니 시부모님들이 "다녀오지 그랬냐. 바람도 쏘일겸." 하시면서 안타까워 하셨다.
' 맞아, 바람을 쏘일 필요도 있는거야.' 그래서 만사 제켜놓고 오늘 아침 문제의 대하를 먹기 위해 서산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시어머니께 조잘조잘 모두 말씀 드렸더니 " 나두 같이 가면 좋을텐데 가거든 대하 좀 사오렴. 느이 아버님이 대하 잡숫고 싶다고 하셨거든"
" 물론이죠." 경쾌한 대답을 하고 환호를 받으며 생각도 못한 가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서산에 도착하니 바람이 세게 불어서 대하가 없다고 한다.
'이크! 이일을 어찌하노. 나야 못먹어도 그만이지만 시부모님은?'
" 안돼요. 대하를 꼭 사가야 되는데..."
여기저기 알아보다 안면도까지 대하를 먹으러 원정을 갔다.
높다란 다리밑으로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것도 좋고 파란 하늘도 좋고 울긋불긋 단풍도 좋지만 하영이 아영이를 이모한테 맡기고 모처럼 혼잣몸으로 나타난 신주련님과 호호 깔깔 떠드는 것이 제일 좋았다.
처음 가보는 안면도, 철 지난 바닷가, 그러나 대하철이라 그러는지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갈매기 끼룩끼룩 떼져서 날아다니는 바다를 쳐다보며 35개월 막내 하선이는 무척 즐거워했고 남편은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댔다.
식당 입구마다 수북히 쌓인 대하 사이를 지나 대하 먹으러 오라고 초대한 분을 따라 식당에 갔다.
하이얀 소금 위에 수북 수북 대하가 올려지고 분홍빛을 띄며 익는 동안 날로 껍데기 솔솔 벗겨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대하 맛이라니.....
꿀꺽!
먹고 먹고 또 먹고
" 나 잘못한 거 없는데......"
너무나 배가 부른 남편이 기이한 하소연을 했다. 으하하하!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서 호일에 싸 가지고 안내해 주는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 곳,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변, 넓고 긴 백사장엔 우리 뿐이었다.
" 으아~~ 너무 좋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이곳을 미리 준비하셨나봐요. 어쩜 이렇게 좋은 곳에 우리 뿐이지요?"
단단한 백사장에 촘촘히 박힌 조개껍질,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아직은 부드럽게 느껴지는 바닷바람.
모든 스트레스, 답답했던 많은 것들이 일시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우린 팔짱을 끼고 먼데까지 걷기도 하고 얘기도 주고 받으며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친숙하게 놀았다.
" 어쩌다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우리가 지금처럼 살 거라곤 전혀 몰랐지요. 너무 신기해요. 전 좁은 의미에서 입양을 했고 그냥 나대로 잘 키우려고 생각했던 것이 전부였죠. 스티브 모리슨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이렇게 서로 만나게 되어 너무 좋은 거 있죠. "
엠펙을 통해 좋은 분들을 알게 된 감격에 겨워서 주절댔다.
" 글쎄 말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만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
" 우리끼리 온 것이 걸리네요. 스티브 모리슨씨 있을때 이런 곳도 오고 그랬으면 좋았을걸......"
"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잖아요."
다들 같이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래저래 대하를 수~ 키로 사들고 집으로 부랴부랴 올라가고 있었다.
'이 좋은 소식을 빨리 전해드려야지! ' 급한 마음에 시댁에 전화를 했다.
" 대하 사가지고 올라가는 길이에요. "
" 그래, 빨리 와라. " 마악 전화를 끊으려는데 아버님이 끼어드셨다.
" 야야! 너희들 수험생도 있는데 그렇게 돌아다녀도 되는거냐? "
" 네? 명곤이는 독서실에 있을텐데요. 그리고 새벽2시나..."
" 집에 있더라. 이잇 ?쯔쯔"
기분이 일시에 프~악 상해서 무슨 화나는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암튼 시댁에 대하상자를 들고 들어갔다.
" 아버니~임, 저 왔어요. 대하 사왔걸랑요. 나와 보세요."
아무말도 못들은 척( 내 특기) 반갑게 인사를 했다.
대하상자를 열고 얼음사이에 끼어있는 큰 새우를 보시더니 표정이 좋아지시려다 한마디 하셨다.
" 명곤이도 챙기고 그러지 시험 며칠 남았다고 그렇게 돌아다니냐?"
아까로 끝났는 줄 알았는데 또 그 말씀!
" 아이 참! 아버님두 갈까 말까 하다가 아버님 생각해서 먼데까지 가서 사가지고 온건데..지난번에 갔다오지 그랬냐 그러셨잖아요."
입을 삐죽거리며 새우를 씻어 껍질벗겨 날로 잡수시도록 손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 알았다 알았어."
먹기좋게 까 논 새우를 드시면서 서서히 기분이 풀리시는 것 같았다.
" 히히히! 저 갈게요."
난 아버님이 왜 그러시는지 조금은 안다.
다리가 불편해지면서 맨날 집에만 계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실까.
공연히 심술을 부려보시는 것이겠지..........
대하 잡수시면서 다 풀리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