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 사고 그후 1년
비가 오려나 봅니다.
습습한 공기를 감지해 낸 관절은 통증을 뿜어냅니다.
아- 아- 아-
교통 사고가 난지 1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사고 후유증은 돌이 되면 더욱 심해진다고
비를 좋아하던 내게 잿빛 하늘을 보노라면 이젠
더럭 겁이나곤 합니다.
돌이 돌아와서 그런지, 습한 날씨가 계속 되어선지
8월은 내게 있어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입니다.
작년8월10일
그날도 가랑비가 내렸었습니다. 토요일이었지만 연장근무를
하여 저녁 늦게 퇴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손수 운전을 하던 나는 주유를 하기 위해 차선을 변경하여
30m 정도를 달리다 주요소에 진입하던중 뒤에 오던 트럭이
받았습니다.
갑자기 '꽝' 심한 바윗덩이가 뒤통수를 치는 듯한 느낌이
었습니다.
멀리서 구급차의 '웽웽'소리에 정신이 빨려
들어갔고 한밤중에 의식이 돌아왔는데 병원이었습니다.
무릎쪽에 인대파열과 경추디스크라 하였고 진통제
때문인지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무겁고
'띵'했습니다.
사고가 난곳은 직장근처로 집과는 자가용으로
1시간의 거리입니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에 잠깐 잠이 들었었는데
한 남자로 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담당 경찰입니다.당신이 차선변경을 하려다
급진입하여 사고를 냈죠?"하더군요.
황당한말씀.
"그런게 아니라 저..."
설명을 하려는데 말을 자르네요.
"증인도 있어요.거짓말 말아요."
그제서야 안개속같은 머리속에서 무엇을 했어야
되는데 그무엇이 어떤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빨리 보호자에게 연락하지 않은것과 가입한 자동차보험
회사에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깁스한 다리의 통증으로 1달 후에야 현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경찰서 근처에 살고, 중소기업 사장이라는 상대방은
득의양양.경찰과 한목소리로 나를 몰아 세웠습니다..
당시의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목발을 짚고 현장을
누볐지만 허사였습니다.
처음부터 미심적은 것은 증인 운운하던 경찰이 증인을 불러
달라 하자 그냥 해본 소리라며 말을 번복 하였고 경찰과
상대방이 한차에 동승하다 우리를 보고 당황해 하던일,
우리의 대화에 끼어 들어 내가 언제 술먹고 운전했냐며
내게 삿대질 하던 상대방(술 얘기는 하지 않았음)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선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을 밝히기엔
나의 힘이 너무 미약했습니다.
결국 7대3으로 내가 사고의 원인 제공자가 되어 여러가지로
불이익을 당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됬지만 사고 현장에서 입원 하게된 병원과의
거리는 꽤 멀었습니다.
중소병원 이며 주로 교통사고 환자들이 입원 해 있었고,
담당 과장님은 친절하시고 실력도 있는 분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인대 봉합술을 받았고 계속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고아 아닌 고아로 남의 집을 전전하는 어린 딸 때문에
집근처로 병원을 옮겨야 했습니다.
옮긴 곳은 소읍의 종합병원으로 담당 과장은 삼심을 갓 넘긴
공보의(군복무 대신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였습니다.
의술은 단지 기술이 아닌 인술일텐데....
이모 저모로 서러움에 울고 또 울었습니다.
입원 한 지 한달이 지나자 퇴원을 종용하였고 담당 과장님의
회진 시간은 바늘 방석이었습니다.
보험금을 더 타내기 위해 눌러 앉아 버티는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치부 되는 것은 아픔으로 시달리는 환자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오른 팔이 고춧가루를 뿌린 듯 화끈거린다는 옆 침상의 홍아주머니는
퇴원을 종용하는데도 의연히 버티며 자신의 이상 상태를 규명하기
위해 근전도 검사, 엠알아이 등 검사를 하러 대학 병원엘
가기도 했습니다. 혼자 아픈 몸을 이끌고.
세번의 수술에도 어깨가 뒤틀린 채씨 아저씨는 통증이 심해 지는
밤이 되면 두렵기 조차 하다더군요.
서로 아픔을 나누고 위로해 주던 그들을 뒤로 하고 2달 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 후가 더 문제였습니다. 어느곳에 숨어 있다가 불쑥 나타 나는
통증은 온몸 구석구석을 공격 하였고 침, 부황, 발 마사지, 물리치료
모든 방법으로 통증을 가라 앉히기에 급급 했습니다.
시간이 약이었습니다. 한 동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동통의 강도가
약해지고 통증이 오는 간격도 길어 졌습니다.
한 시름 놓는가 했더니 이 8월에 다시 뼈를 들쑤셔 놓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만도 어딘데 울지 말자.'
통증으로 울고 싶을 때 내가 내게 위로하는 말입니다.
그 고통의 터널을 아직도 건너고 있지만 잃은 것 이상으로 내게 많은 것을
얻게 했습니다.
가족보다 일이 늘 우선이었던 나의 생활관이 바뀌었습니다.
아프고 외로울 때 보듬어 주고 아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가족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이제서야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픈이들을 돌보는 내가 그들의 아픔을 경험으로 가늠
할 수 있다는 것 입니다.
진정으로 남을 이해 할 수 있다는 것,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건
사랑의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사고로 폐차되기 전 내 차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습니다.
운전석만 형태가 남은 차는 한줌의 고철 덩이 입니다.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아픈 이웃을 위해
하루 하루를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