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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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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만든 우유


BY 달자 2003-08-09

핏물과 함께 먹였던 첫 애 때의 아픈 기억 때문에 둘째의 모유수유를 망설였다.

하지만 아무런 경제적 준비없이 맞이한 출산은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벌써 이가 나기 시작하는데 이제야 카드로 긁은 제왕절개 수술및 입원비의 할부금이 끝났다.

그러니 모유수유는 내게 선택을 두고 고민할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아스팔트 껌딱지같은 가슴에서 젖줄이 솟구쳐 울 아기 먹다가 얼굴에 범벅할 정도니 그 와중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휴대가 간편하니 데우거나 젖병 소독할 일이 없니 하며 좋은 점을 많이 거론하고 있지만-뭐 물론 경제적인 이유로 수유를 시작했지만 영양상 분유보다 훨씬 좋으니 일석이조가 된 셈이긴 하다-그래도 허리 아프고 팔다리 아프고 먹는 음식 가려야 하고..게다가 신랑이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접근금지' 지역이 돼버렸으니 불편한 점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큰 애와의 터울은 만 4년.

하지만 큰 애는 1월생이고 둘째놈은 12월생이라서 그냥 세살 터울밖에 안 된다.

 

빠른 다섯살인 큰 애는 6세반을 다니느라 여간 힘들어하는 게 아니다.

간혹가다 어리버리한 모습에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어쩌랴....일찍 보낸 탓에 성격까지 굼뜨니...다 지 팔자려니 한다.

 

고 녀석에게는 '이제 기는 연습을 시작한 둘째와 함께 놀기'가 가장 시급한 과제인 모양이다.

 

"엄마. 동생은 왜 물만 먹구 살아? 나차럼 밥두 먹구 빵두 먹구. 아이스크림두 먹으면 금방 자라잖아."

"응. 엄마가 먹으면 젖을 통해서 다 동생한테 가니까 걱정하지마."

 

며칠전 동네 애기엄마랑 나들이 삼아 들른 패스트푸드 점에서 장난감을 빙자한 햄버거를 사먹었는데 장난감이 맘에 안들어 떼쓰다가 비닐을 뜯은 채라 결국 바꾸지 못하고 집에 와서 먼지 털린 일이 있다.

오늘 그 생각이 나서  장난감을 빙자한 햄버거 세트를 사고서는 그때 가지고 싶어했던 장난감을 달라 했다.

 

장난감에 홀딱 빠져서 햄버거는 입에도 대지 않는 녀석.

마침 출출하던 차에 내가 야금야금 먹고있었다.

 

"엄마 동생 젖먹여! 얼른!"

"여긴 사람들이 많아서 엄마가 챙피한거야.. 집에가서 먹일께."

"안된단말야! 지금 먹어야 동생이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단말야!"

하며 또 다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난 큰 애를 꼬시다가 지쳐 조심스레 옷자락을 들어 올렸다.

 

"동생아....햄버거 많이 먹구 쑥쑥 자라서 형이랑 함께 로봇 놀이 하자...."

 

큰 애는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더니..여간 흐뭇해하는 게 아니다.

 

요놈은 아직도 내 몸이 무슨 믹서기인줄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