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산불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코알라 살처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82

혼자노는나이


BY 27kaksi 2003-08-09

내가 젊었을때는-이렇게 말하니까 퍽 늙은것 같군-

멋지게 늙는것에 자신이 있었다.

모든면에 여유롭게 아주 멋진 중년을 살 수 있을것 같았고, 그렇게

천천히 노년이 닥아드리라 생각 했었다.

20대때는 삶에 찌들어보이는 중년의 아줌마가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

으로 느껴졌고, 꾀죄죄한 늙은 할머니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늘 의문을 가졌었다.

늙수구레한 사람들은 왜그리도 보기가 싫었던지....

그러나,

요즘 지천명의 나이가 되고 느끼는것은 그런모습은 쉽게 되어지는것

이란걸 알게 되었다. 내가, 우리 그이가 ,내주위의 사람들이 그렇게

되어져 있으니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늙어가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아픈데도 많아

지면서, 주위가 허전해지는.......

오늘 아빤 밤 낚시를 떠나고, 큰애는 학원 알바 끝나고 데이트가 있다고

전화가 왔고, 둘째는 건축사사무실 사람들과 단합대회가 있대고,

막내는 군대서 휴가나온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나갔다. 어쩌면 방사선

처럼 자기길들이 주어지는 나이가 되어 흩어졌다가는 늦은시간에

잠깐씩 모였다가는 아침이면 또 흩어지고....

지금 자로는 내발을 베고 잠이 들었고 난 컴이 친구이다.

자로는 내가 있으면 편히 잠을 잘 수 있나보다. 식구들이 있을 때보다

그저 잠만 잔다 .이리저리 뒤채다가 벌렁 누워서 자다가, 요가를 하듯이

머리를 꼬고 자기도 한다. 꿈도 꾸는지 킁킁 대기도 하고...

개 팔자가 상 팔자라더니......

갑자기 걱정없는 그녀석이 부러워진다. 난 혼자 놀아야 하는 나이지만

정말 다행스러운것은 나는 혼자 노는데 익숙 하다는거다.

예전부터 혼자 노는일에 재미를 느끼는 편이니까,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혼자 있는공간은 참 여유롭다. 음악을 들어도

되고 책을 읽어도 되고, 글을 써도 되는 내게 주어진 시간.

바람도 알맞게 불고 갑자기 기분이 쾌적해 진다.

난 지금 이시간이 좋다. 어깨가 다들어난 시원한 옷을 입고, 모든 걱정

은 잠시 묻어 두자. 요즘 너무 걱정을 많이 해서 머리가 하얗게 된

느낌이다.자꾸자꾸 많은 생각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난 심한 걱정으로 힘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이 없는 바보가 되기로 했다. 그생각은 현명한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사실 무슨 대책이 있는것도 아니니까.

오늘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은 오히려 내게 안정감을 준다.

역시 난 방안 퉁수다. 혼자 있을때 비로소 나를 바라볼 수 있다.

어제, 서울 법대 출신인 한양투자 동기이고, 지점장시절 동기인김용환

씨와 점심약속을 갔다온 그인 이모네 가자고 했다. 낚시도 할겸.

요즘 기분이 울적한 그일 생각하면 어디든 가자면 가야겠지만,

난 안가고 싶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언니네 가고 싶지 않았던건 처음

이었다. 언니를 만나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할것 같아서다.

"언니 나 요즘 너무 힘들어, 그이도 나도 모든것을 체념 하기엔 아직도

젊은데, 차츰 자신이 없어, 아이들 잘 자라준것 말고도 더

아직도 더 원하는게 있나봐." 뭐 이런 말을 할것 같고......

언니에게조차 말하고 싶지 않다. 언니에게는 좋은 얘기만 하고 싶다.

그분도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결국 우린 차를 몰고 무작정 나섰다. 저녁 바람은 그런대로 선선해서

그는 기분이 좀 나아지는듯 했다. 나도 짙어진 신록빛이 싱그러워서

잠시 모든것을 잊을 수 있었다.

짙은 녹색은 한껏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가슴속이 서늘해질 만큼

마음이 녹색으로 물이 들었다. ,

안성에 있는 영화 '섬'의 촬영지인 고삼 저수지에 갔다.

개성이 강한 영화도 생각이 났었고.....

. 몇만평이라던가? 아무튼 큰 저수지에서 떨어지는해를 물끄러미 보는

것도 상당히 운치가 있었다.

산그림자가 아름답게 드리운 맑은 수면은 바다나 강과는 또다른

경치를 보여주었다. 간간히 앉아 있는 강태공 들의 모습도 보기가

좋았고, 한적한곳에 차를 세우고 그와 가져간 차를 나누어 마셨다.

난 그냥 그렇게 차를 마시며 물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얘기나 나누는게

좋은데, 그는 여자들과 같이 앉아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여자들도

낚시를 많이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아마도 난, 그의 성화에 못이겨 머지않아 낚시꾼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예전에 테니스도 그랬고, 골프도 그랬고, 난 그의 권유로 하는

경우가 많다. 헬스도 그렇고....

문득 '체홉'의 귀여운 여인이 생각이 났다. 적응을 잘하는여자.......

두서너군대의 낚시터를 돌아본뒤에 돌아왔다.

그는 잠깐이라도 낚시를 하고 싶어 했지만 내가 등을 떠밀어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을때 걸친 반주 덕인지 조수석에 앉은 그의 기분이 좀

나아진듯 했다. 말없이 그의 두툼한 손을 잡아본다. 따뜻하다.

언제나 나는 그자리에 고인 물처럼 있는데,....

갑자기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속력을 내고 싶어진다.

그의 말이 금방 나온다." 야! 천천히 가자"~

어쨌든 그가 예전 처럼 눈코 뜰새없이 바빠지길 바라고.........

**

가족이 없는 지금은 나만의 시간이다. 뽀송하게 잘 마른 식구들의 빨래

를 개며, 마냥 행복한 미소를 입안 가득 머금고 싶은 그런 조용하고

한가한 나만의 시간이다.

작은 이유를 달아서라도 행복해지고 싶다.

'나물먹고 물마시고 하늘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다' 고 노래한 시인처럼,

지금 내게 주어진 이모든것들을,

'내잔이 넘치나이다' 하고 감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