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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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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예찬


BY 박티 2003-08-09

친구예찬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오래도록 만나지 못하였던 친구를 불러내었다.참으로 오랫만에 같이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얘기도 나누었다.

 

 처음엔 추억거리부터 시작하여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분명 펼치고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 이야기는 자신들도 모르게 가족 이야기로 돌아와 있었다.

 

 남편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그리고 가족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에 열심인 우리의 모습은 마치 아내이자 어머니의 자리 그 이상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강변하는 듯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서로 집도 가깝고 등 하교도 같이 하면서 절친하게 지냈던 동창생인 그녀와 난 참으로 오래도록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남편에 대한 작은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남편은 대학을 40세가 훨씬 넘어 졸업을 할 수 있었기에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그 기사에 아내인 내 이름이 살짝 나왔더란다.

 

 기쁘고 감동적인 해후였지만 거의 25년이 흐른 후 만난 우리는 약간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공통의 화제를 찾느라 고심도 해야했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할 때는 예외였지만.

 

 친구는 대학교수인 성격좋은 남편과 재능있는 딸, 아들을 두고 있었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이 되어 있었다. 

 

 살아온 삶에서 그리 큰 고통은 없어 보였고, 여유도 있어 보였다. 어쩌면 정 반대편에 서 있는 나와는 참으로 비교되는 그런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어렵기만 하였던 내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좋은 일들만을 회상하면서 " 그 때도 말야, 넌 참 어른 같앴어..."라며 날 추켜 세웠다.

 

  이번의  만남도 그저 그녀의 수수하고 넉넉한 마음과 편안함에 이끌리어 전화를 하고 만나자는 약속을 했었다.

 

 지나온 얘기를 나누던 중에도 나의 생활을 꼼꼼하게 묻고 챙기던 그녀는 축하할 일이 생겼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가정의 환란풍파 끝에 남편의 뒤를 이어 한참이나 나이들어 뒤늦게 학업을 계속해 곧 졸업을 하게 되는 나를 두고 친구는 " 이게 어떻게 그냥 넘어갈 일이야? 이건 말야, 내 대리만족이야, 대리만족..." 하고 환하게 웃으며 더운 날씨인데도 꼭 선물을 해야 한다면서 이곳 저곳으로 나를 끌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런 친구를 보며 난 은은한 허브향, 그리고 하얀 들국화 한송이를 꽂아놓고 마음껏 기뻐할 수 있는 작고 소박하고 예쁜 질그릇 옹기,  이런 것들이 생각났다.

 

 나는 친구의 선물을 말리고 싶었지만  그녀의 진실한 우정을 저버리는 것 같아 결국 눈 앞에 있는 찻잔세트가 마음에 든다고 해버렸다.

 

 친구의 마음을 닮은 곱고 하얀 우유빛 찻잔을 품에 안고 돌아오는 내내  삶은 이래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라고 난 행복한 사념(思念)에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