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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61) *아파도 가야만 한다*


BY 쟈스민 2001-11-15

새로운 계절을 맞이함에 지독한 몸살이라도 앓는 것인지
며칠째 찌뿌드하니 몸 컨디션이 영 아니다.

건강에 대하여만은 늘 자신하며 살았는데 ...
새삼 나이를 먹어가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일찌감치 내리는 어둠을 뒤로 하고 퇴근길에 병원엘 들른다.

치료를 받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아파서 운전을 하고 갈 자신이
없어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택시를 타고 온 남편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집근처에서
아이들을 나오라 하여 늦은 저녁을 먹는다.

아무말없이 앉아 있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어디가 아프냐?
많이 아프냐? 연신 물어댄다.
밥을 먹으러 가서도 서로 엄마 옆에 앉겠다고 야단들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다행히 아이들은 스스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며 엄마를 기다렸노라고...
의기양양하게 거실의 등을 켜면서 내심 개봉박두를 외쳐댄다.

평소의 늘 어질러진 흔적은 찾아볼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씀이 고마워서 맘 놓고 늘어져 아플수조차 없는
나를 본다.

빨래를 개어서 차곡 차곡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는 일을
이제 아홉살 난 딸아이는 잘도 한다.
쬐그만게 손끝은 어찌 그리 여물기도 한지 ...
몸이 아픈날에는 그런 것조차 왜 그리 눈에 잘 띄는 걸까?

남편에게 오늘만큼은 세탁기를 좀 돌려달라 부탁하고 일찌감치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위층인지, 아래층인지에서 드르륵 거리는 가구 끄는 소리,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TV속 스포츠 소리...
일제히 깨어 있는 신경들이 온통 그 소리를 ?아 가고
시계초침 소리조차 날카롭게 들리기만 하는 불면의 밤을 보낸다.

깜박 잠이 깬 새벽에 일어나 보니 가족들은 모두가 잠들어 있고
아무래도 이상타 싶어 현관으로 가 보니 현관문도 잠그지 않은 채
모두들 잠든 것이다.

딸아이만 둘인 나는 놀래서 또 한번 잠에서 저만치 멀어진다.

어쩌다 하루 내가 아프다고...
빨래는 뭉쳐진 채 널려 있을 테고, 현관문은 열어 두고,
또 다시 삐뚤 빼뚤 놓여진 물건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띤다.

마음 놓고 퍼질러져 느긋하게 아플 시간 조차도 내겐 없는 것인지
나는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건가 회의가 든다.
그래도 아픈 엄마가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 옆에 꼭 붙어 잠든 아이를
내려다 보면서 내가 건져 올려야 할 희망의 조각을 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2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한결같이 가야하는
곳을 지켜낸다는 일은 그리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리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몸이 아파도 누군가가 내 대신 나의 일을 하여 주어야 할
수고로움이 미안스러워서 올곧게 지켜내던 그 자리에 대하여
참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건강한 몸으로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할 것이다.
그동안의 내가 그래왔듯이...

학창시절 내내 우등상을 놓칠 때는 있어도
개근상 만큼은 꼭 받았던 기억들 ...
아파도 가야하는 곳이 있다면 맘 놓고 아플수 조차 없던 그 기억들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그건 아마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삶이 아닌 진정으로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켜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몸의 병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일테지만
마음의 병은 스스로가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살아가면서 ...
어떤 일로든 마음의 병을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맑게 살아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은 삶의 길목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말이 오늘도 나에게 작은 힘이 되어 일어서게 해 주고
값진 하루를 살아낼 의미를 부여해 줄수만 있다면
난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서 그렇게 있을 수 있겠지...

아픈 하루 마저도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줌에
감사해야 할 내 삶의 한 부분일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