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저녁 6시.
나는 고시학원 딱딱한 의자에 앉아 그 놈의 망할 기본서를 쏘아보며 속으로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 내일은 꼭 방석을 가지고 와야지. 와~~앙 푹신한 놈으로말이야!"
난 그날 꼬박4시간동안을 눈뜬 장님처럼, 멀쩡한 벙어리처럼, 귀뚫린 귀머거리처럼 앉아있어야했다.
이것이 "법" 이라고는 요리만드는 법, 애 키우는 법, 시부모 남편 잘 모시는 법, 청소하는 법밖에는 모르는 내가, 바로 이 짱아찌 아줌마가 법공부를 시작하는 첫 날의 감상이었다.
그렇다고 지레짐작으로 "엉? 이 아줌마가 누구따라 사법고시하나?" 하고 궁금해 하지 말라.
옥탑방 고양이의 경민이는 정은이의 알뜰한 내조를 받으며 법공부를 하지만 이 짱아찌는
남편의 엉성한(?) 외조를 받으며 그 잘 나간다는 00000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다.
난 그렇게 학원생활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후회의 연속이었지만 (이걸 해?말어?) 비싼 학원비에 책값까지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구두쇠 체질에 짠소금 기질까지 있는 우리남편 앞에서 그런 돈을 날리겠다는 이야기는
"너, 나랑 살래? 안 살래?"로 통하는 바로 직통 길인 관계로 아예 함구무언!
죽어도 책속에 빠져죽는 법 밖에는 없었다.
더구나 한술이 모자라 두술 더 뜨는 내남편.
"야! 이런 일은 되도록 많이 알려놔야 나중에 창피해서라도 죽도록 공부해서 한번에 합격한대..... " 하며 여기저기 나팔을 울려 놓았다.그 결과 하루도 안돼서 나는 여러 사람들의 도마위에 오르는 불쌍한 생선 신세가 되었다.
아 이고 불쌍한 내 자존심.
포기하자니 자존심이 허락치 않고 그대로 진행하자니 심신이 고달프겠고...
번번히 남편은 내 자존심을 교묘히 이용하는것 같다.
이런것을 보면 머리는 남편이 더 좋은 것 아닌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