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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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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귀신까지 베끼냐?


BY 2003-07-28

우리나라에 일본 고대사를 정통으로 전공하신 유일한 분으로 고려대학교 김현구 교수님이란 분이 계시다. 그 분은 정말 객관적으로 일본과 한국을 보고 말씀을 하셔서 가끔은 한국인으로서 기분 나빠질 때도 있곤 하다.

그래도 그 분 말씀 중에 참으로 공감했던 내용은, 일본의 영향이 한국인들에게 너무나 깊게 침투해서 생활과 무의식까지 지배하고 있는데 그걸 깨닫고 있는 한국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는 거였다.


어느 분야나 많이 그렇겠지만, 언어의 측면에선 일본어를 알고서 한국어를 전공하다 보면 기가 막혀 허허거리게 될 때가 많다.


필자, 대학원생으로 작년에 민속학 공부를 했었다. 그러다 김종대 선생님의 책을 읽었는데, 그 분이 설화 연구를 하시면서 쓴 <한국의 학교괴담>이라는 책이었다.

우리나라에 돌고 있는 소위 무서운 이야기들이 거의 다 일본 이야기라는 요지인데, 본문을 조금 소개한다. 책에선 이 외에도 한국 괴담들이 일본과 맺고 있는 연관을 아주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학교 괴담은 사실 한국적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약간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일본에서 전승되던 이야기들과 흡사한 부분이 많으며, 일제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유지된 것들도 더러 보인다. 학교 괴담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대학생을 중심으로 많이 조사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1998년에 한국에서 방영된 <여고괴담>의 근간이 일본의 괴담을 토대로 했다는 점도 이것을 증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중략)

동상에 대한 이야기는 초등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1941년 태평양전쟁 이전에 니노미야 긴자로의 동상을 소학교에 많이 세웠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니노미야가 읽고 있던 책을 다 읽고 덮어버린다거나 등에 장작을 지고 있는데 아침과 저녁에 세어 보면 장작의 개수가 다르다는 등의 내용이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야기들이 일본의 니노미야 동상 이야기와 비슷하다.


다시 말해, 구전문학인 설화의 속성상 근접한 지역에서 같은 이야기가 발견된다는 것은 일본의 이야기들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한국인들이 일본 이야기라는 것도 모른 채 설화를 퍼뜨리고 있다는 말이다.


-화장실에서 파란 휴지 빨간 휴지..
-초등학교의 세종대왕 동상이 무릎 위의 책을 다 읽으면 일어나서 학교가 망한다...
-12시에 학교 화장실에 가면 거울에 유관순이 나타난다는 얘기...
-학교의 비밀 12가지를 알면 죽는다는 얘기...


전부 다 일본의 괴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뿔달린 도깨비는 일본 거고 한국 도깨비는 애기 모양이라느니 하는 헛소리가 많이 도는데, 아니다. 한국의 도깨비는 모양이 없다.

당연히 소복입고 머리 푸르고 입가에 피흘리는 처녀귀신도 일본 귀신이다. 일본에서의 여자 귀신을 보라. 하얀색 후리소데에 머리 푸르고 입가에 피흘리며 나온다. 링에서 나온 사다코를 생각해 보라.


물론, 드라마나 영화에 귀신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를 형상화해 내야 하고, 머리 풀고 소복을 입은 시체로 분장하는 것이 우연하게 맞아떨어진 현상일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이런 처녀귀신뿐만 아니라 다른 귀신들 - 도깨비 등 - 의 모양까지 일본의 것이란 자각없이 한국이 따라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공포 영화들을 봐도 좀 웃음이 나오는데, 한국인들은 엄청 현세적인 사람들이라 한국의 전통에선 귀신의 형상을 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귀신들은 몸이 없다. 한국인들에게 귀신이란 인간을 위해 부리는 하인같은 존재이지(조상신을 모시는 이유도 현세의 사람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일 뿐이다) 인간에게 위협을 가해 오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반면 일본은 전쟁이 많았던 탓에 인간의 죽음을 많이 접해서인지 귀신들에게 하나하나 형체를 다 만들어 주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본 문화의 한 획을 이루고 있다는 게 일본민속학을 공부한 외국인들의 공통된 견해인데, 그들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정말 크다. 그래서 그들에겐 귀신이 나타나고 귀신이 보이는 것이다.

일본은 중세에 <백귀야행>이라는 이름의 귀신 그림책을 만든 적이 있다(같은 이름의 일본 만화도 있다. 이마 이치코씨가 그린..). 그리고 이 백귀야행에 나오는 일본 귀신들 그림을 이쁘게 캐릭터화 해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 유명한 '포켓몬스터'다.

 

어느 나라의 문화는 이렇게 그 나라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전세계를 공략할 수 있는 하나의 '산업'이자 '상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의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끔 확실히 그 나라 문화를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라마다 민족마다(물론 우리와 일본을 민족개념으로 나누기 매우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문화의 원형적 의미와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들이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에게 곰은 신성한 동물이다. 까치는 복을 준다. 이것이 한국 - 동이예맥족의 토템이다. 이것은 동이예맥족에게만 통하는 이야기다.


반면, 일본의 마쯔리(전통축제)를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은 여우를 모시고 있는 신사가 정말 많다. 여우신이라는 토테미즘과 여우와 관련된 것들이 정령적 힘을 갖는다는 애니미즘이 일본 전역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일본족'만의 문화다.


일본 최고의 음양술사인 아베 세이메이의 부모가 여우였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설화에서 여우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 문화에서의 코드를 읽어내고 의미를 해석해 내는 것이 민속학이다

 

이번에 나온 공포 영화 <여우계단>을 보고는 정말 말 그대로 황당했다. 일단 여우라는 동물이 나오는 토템이 되게 황당하고(우리나라 문화 코드에선 성황당이나 달, 또는 뱀 등이어야 한다) 여우에게 소원을 비는 행위 자체가 일본 신사에서 있을 일이고 여우가 저주의 식신으로 활약하는 것도 일본 특유의 음양술이다.


더 재미있는 건 한국인들의 괴담민속에는 저주라는 항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왜 인형을 무서워하는 줄 아시는지? 한국인들의 저주는 인형을 만들어 화살 박는 것이다. 그래서 인형을 무서워하긴 해도 그나마 저주 진짜 거의 안 하는 편이다(저주가 한국문화에선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나라보단 저주의 방법들이 발달해 있다. 여우계단이 내리는 저주는 절대 한국문화의 코드가 아니다.


국수주의니 민족주의니 뭐니뭐니 하며 내 글에 반박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그러나 난 여우계단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게 한국어를 쓴다는 거 빼고 일본 영화랑 다른 게 뭐지? 뭘 봐서 한국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우리 것을 먼저 알고, 우리 전통의 의미와 미학을 이해하고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한국이 강대국들 틈새에 끼어 오랜 시간을 독립국으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라는 자의식이 강한 문화때문이라는 한 역사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며, 문화가 산업과 경제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 전망하는 이때, <여우계단>같은 국적불명의 영화는 아쉬움을 던져 준다.


문화산업에서 가장 핵심은 아무래도 '독창성'일 것이다.


일본의 공포 영화 <링>의 성공을 보자. 그것은 일본 공포 코드의 집대성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의 공포'라는 독창적인 내용이었기에 성공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전세계 영화시장을, 음악시장을 진정 겨냥하고 싶다면 공포영화를 만들 때도 일본영화 짝퉁따위가 아닌 진정한 한국의 공포와 권능에 대한 것이 통할 거라는 말을 조심스레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