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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래기를 아십니까?


BY 리 본 2003-07-25

털래기를 아십니까?


여름이 되면 유난히 그리워지는 음식이 있다.
말하자면 경기도식 민물매운탕이다.
가끔 경기도 사람을 만나면 "혹시 털래기 아세요?"하고 묻곤 한다.
같은 음식을 먹으면 자랐다는 동질감의 문화코드를 찾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얼마전 초등학교 친구들 모임에 식사후 한담을 나누며
"얘들아 난 요즘에 털래기가 그렇게 먹고 싶드라"하니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하는 것이었다.
한친구가 일산 어느역 근처에 털래기 잘하는 집이 있다고
언제 함께 먹으러 가자고 하기도 했지만...
그 어릴적 추억이 스며 있는 고향의 털래기 맛과 같을 수 있으랴?

오빠들 틈바구니 속에서 자란 나는 천방지축으로
노는 꼴이 영락없이 선머슴마 그 자체였다.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가면 두살 많은(학년으론 일년차이) 남자조카(언니의 아들)와
삼태기와 체를 가지고 맑은 물 흐르는 도랑 여울목에다
삼태기를 받치고 조카가 발로 훑어 "옥아 들어!" 하는 추상 같은 명령과 함께 삼태기를 번쩍 들어 올리면
미꾸라지 붕어 송사리등등 민물고기를 꽤 많이 잡을 수 있었다.
발로 훑는 순간과 삼태기를 드는 순간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야하는데
난 그걸 잘 못해서 두살 많은 조카한데 늘 지청구 듣기가 일쑤였다.

딱지면 딱지, 구슬이면 구슬, 그림도 잘 그리고, 필체도 좋은 조카와는 달리
덜렁덜렁대는 나는 조카의 조수 노릇하기도 버거운 시절이었다.

곤충채집한다고 잠자리채 가지고 산과 들로
식물채집한다고 논에가서 물위에 떠있는 물옥잠과 개구리밥
그리고 물위를 빙빙도는 소금쟁이 물방게등을 유심히 쳐다보면
그렇게 재미있고 신기하고 논에서 나는 비릿한 흙내음이 왜 그리 좋던지...

비온뒤 논두렁에 가서 한식경이나 고기를 잡아서 집에 돌아오면
마당 한켠에 제물로 놓인 가마솥에 고추장을 풀고
텃밭에서 키운 감자랑 풋고추 갖은 양념과 국수를 넣고 걸죽하게 끓이면
그이름도 희한한 털래기가 되는것이다.
마당에 멍석 깔아 오가는 사람들 불러 땀을 뻘뻘 흘리며 먹던
인정스런 털래기의 맛을 어디서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미꾸라지의 풀어진 희멀건 눈이 징그럽다고 국수와 감자만 골라 먹던 나였지만
은근하고 끌리는 그 털래기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여름이면 그리워지는 음식이 있다.
그 이름도 이상한 털래기이다.

옥수수대의 단물처럼 그 달콤했던 유년의 기억의 한자락 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