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학생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선 시간은 9시였다. 아이들이 와락 달려온다. 부엌에 있는 나에게 딸아이가 매달린다.
"엄마 뽀해줘 잠 잘오게"
"그래" 쪽 소리 나도록 입을 맞췄다
아들 녀석은 요즘 학교에서 발명에 대한 숙제를 하는 모양인데 궁리한대로 안돼서 허둥대며 자꾸 말을 한다. 관심 없는 엄마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 모양이다. 아들녀석이 입을 연다.
"엄마 선생님이 말하데 새벽 두시에 자서 여섯시에 일어나야 대학 간다고"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 엄마도 학생 때 많이 들었어"
"대학 가기 힘든데 가지 말까"
"공부해야지 엄마도 요즘 책보잖니 공부 못해서"
"엄만 어떤 학교 나왔어?"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튀어나오다니 당황했다.
"공부 못해서..."
"...."
"공부 해야해 엄마도 계속 책보잖니 너도 열심히 해"
삐죽이 아들 녀석이 입술을 내민다.
"쳇만 하면서 뭘 그래"
"공부도 해 임마"
"난 일류 대학 가야지"
아들녀석은 요즘 시험 잘치면 사준다고 약속한 컴퓨터에 관심이 있다. 사실 엄마가 독점하고 있으니 게임을 못해 서운한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의 열등의식을 자극하다니.
늦은 저녁을 준비하는데 남편의 말을 던진다.
"아들한테 한방 먹었군"
"내가 먹었음 당신은 어떻구?"
"....."
남편은 아버지를 여의고 형 대학 보낸다고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어려운 생활고라고 말하면 변명이 될 것이다. 나는 어떤가 경제적 여건은 좋았지만 공부에서 벗어나 중학교 시절부터 미전이나 시화전을 매주 보러 다니고 mbc kbs 방송국의 콘서트며 라디오 프로그램 편성을 꿰고 있지 않았던가.
아들녀석의 말은 살아가는 과정은 빼고 학벌만 가지고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경쟁사회에 뒤떨어진다는 것은 낙오자란 것을 아들도 안다. 씁쓸하다.
출판 기념회 뒤풀이 때 들었던 대화가 생각난다.
"어느 대학 나왔죠?"
"여기서 안나왔는데"
"......."
"......."
여중 시절의 한문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공부는 다 때가 있어. 지금도 늦지 않았어. 열심히 공부해라'
그래 늦지 않았다. 서른 다섯, 마흔, 쉰... 언제나 청춘처럼 공부하는 자세 잃지 말고 살리라. 죽어 갈 때도 학생이라 않던가.
2001. 10. 23 뒤척이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