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앞뒤 잴 여유도 없이 이사를 하고 보니
집 앞에 푸르른 공원이 있고 동네도 번잡하지
않은 것이 가진 돈에 비해 그나마 수수하게
집 잘 얻었구나 싶었다.
우리 것은 아니지만 마당에는 포도나무가 제법
운치있게 늘어져 오며가며 따먹는 즐거움이 있었고
고구마, 고추, 상치도 심어져 있고 감나무,
해바라기도 한켠에 자리하고 있어서 마당집에
사는 것이 소원인 딸내미들도 무척 좋아했었다.
둘러보는 이웃마다 약속이나 한듯이 강아지를
기르고 있어서 정감이 갔고 아파트와는 달리
문만 열면 얼굴 마주치는 민망함도 없어서
내마음도 적쟎이 여유로웠는데...
시간이 가고 달이 가면서 주위의 풍경이 눈에 익자
여늬 도심 풍경과는 좀 다르다 싶은 것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개인 주택가이다 보니 집집마다
화초가 있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우리집 골목 앞
담장에 늘어진 호박넝쿨은...?
그리고 그 집 담장을 넘어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이층인 우리집에서 내려다 본 그 집(MR.MAGNUS)에는
마당 한가운데 통나무로 만든 원탁과 의자가
자리잡고 있고 그 위로는 등나무가 멋드러지게
드리워져 있었다.
뿐 만 아니라 일층이며 이층 계단과 난간까지
빽빽하게 화분이 놓여져 집 전체가
푸르름 속에 잠겨 있는 형상이었다.
하지만 골목에 떨어져 나뒹구는 감꽃이며 떨어진
호박 잎사귀, 기타 푸르름의 잔해를 치우는 것은
나의 몫이었으니 허락없이 남의 집 정원을 엿보며
감탄을 발한 값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매일 빨래를 널며 앞집을, 설겆이를 하며 뒷집을,
때로는 옥상에 올라가 산지사방 무차별적으로 이웃집들을
훑었다. 각 집의 정경은 나로 하여금 시간을 역행하여
어린시절로 돌아간 착각이 들게끔 하였다.
주방에 난 자그마한 창을 통해 보이는 뒷집 이층에서는
여름내내 나팔꽃, 맨드라미,봉선화가 피여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난간을 휘감고 자란 호박은 바람이 불면
작은 우산같은 잎들이 너울너울 물결을 일으키었다.
실내 온도가 34도를 넘는 날이면
기필코 에어컨을 켜고야 말 것이야...
호기롭게 리모콘을 집어들다가도 문득 그 호박잎의
물결이 보일라치면 더위도 짜증도 어느새 사라지곤 하였다.
벤자민, 해당화, 팔손이까지 덩달아 살랑바람에
몸을 흔들면 그 순간만은 현재 내가 결혼생활 중
가장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음도 잊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화초,쓰레기,허물어진 담장이 삼박자로
어우러져 귀신 뛰쳐나올 것처럼 잡탕인 집도 있다.
바로 옆집...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얼굴 한번 보고 싶다.
살면서도 이곳이 서울인가 싶게 살고 있는데
나의 헷갈림에 결정타를 날린 일이 있었으니
이곳이 정녕 서울인지 여러분께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언제부터인가 새벽이면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기 일쑤였다.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기까지 새벽에 깨어서는
원치 않는 이른 아침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것은...(나의 말을 믿으시라)
장닭이 훼를 치며 우는 소리였다!
말 그대로 동쪽녘이 훤해질 무렵이면 꼬끼오...하는 장닭 말이다.
그놈은 새벽부터 아침 8시무렵 온가족이 출근과 등교를 하고
집에 나혼자 남겨질 때까지 줄기차게 울어댔다.
두마리도 아니요, 세마리도 아닌, 단 한마리가
온동네 떠나갈 듯 서너시간을 고래고래...매일 우는 것이다.
그놈이 어느 집에 사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여름날부터 시작된 울음은 계절이 바뀐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나의 새벽잠을 깨웠고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떠나자
그놈의 울음도 여느 때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달디 단 새벽잠을 깨우는 장닭 소리가 미워서
저놈의 목을 따든지 해야지...하며 절규하는 나에게
나보다 한시간은 더 잘 수 있는 남편이 말하였다.
"그만 포기하고 일어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아침은 와."
죽으나 사나 아이들 편만 들더니 이젠 닭편까지 든다.
맞다. 저놈의 장닭이 울어서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니라
아침이기 때문에 저놈이 우는 것이다. 매일 알람 맞출
수고를 덜게 되었으니 내쪽에서 감사를 해야지 휴...
그런데 저 닭은 하루도 빠짐없이 운다.
비가 와도 운다.
지금 내가 긴장하는 이유는 겨울이 되었을 때
캄캄한 겨울 새벽 5-6시, 그때도 저놈이 울까 하는 것 때문이다.
어제부터 별로 유쾌하지 못한 정치뉴스가 나온다.
닭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치던 노정객이
내일 모레면 일흔이신 친정엄마까지도 지겹다고 외면하는
또다른 노정객과 회동하였다 한다.
그대들이 있어야 정치판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착각을 버리고 그만 사라지시라.
그대들이 없어도 대한민국 정치는 돌아간다.
닭이 울지 않아도 아침은 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