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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18개월 아이에게 생굴을 먹여 장염에 걸리게 한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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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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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행복을 보다[6]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BY 더기 2001-01-07

내 사랑이 마지막 가는 길에 나는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병원 생활내내 우리 둘밖에 없었는데... 미혼모인줄 아는 사람도 있었

는데 누가 있어 나보고 집에 가라는건지....

돌때 손수 지어 입힌 한복을 가져다 입히니 발이 쑥 나왔다 .

그새 키가 많이 자라 있었다. 작은 집을 얻고 외곽에 화장터로 향했다

시어른과 시이모 형제들까지 누울자리는 이미 닦아 놓았지만 다행히

아무도 그리가자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몸속에 남은 상처를 그대로

두지 말자는 남편의 말해 그러기로 했다.

타오르는 불꽃의 소음을 들으며 그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프지 않다는 생각에 미치자 오히려 맘이 편했다.

남한강 쪽으로 간다는걸 우리가족이 유일하게 함께 가본 궁평리로 가

자고 고집을 피웠다. 단지 흔적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왠지 낯선곳엔

보내기 싫었다. 물빠진 바다를 걸어들어가 아이의 흔적을 지우고 집으

로 돌아 왔다. 곧 따라 가리라 내 무모한 욕심때문에 아일 힘들게 했

구나 같이 가면 되는것을....

...

그러나 조용한 슬픔조차 내겐 허락 되지 않았다.

아이 잃고 달라진 남편에게 끊이 질 않는 전화 ,데리고 올라와 사과

하라는 시숙의 전화 였다 . 시어머니가 머리 싸매고 누웠다 했다.

결국 아이보낸지 한달도 못되어 남편 손에 이끌려 본가엘 갔다.

내내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니 남은 병원

비를 내지 말걸 미련한짓 했다고 돈아깝다는 이야기 끝에 간혹 웃음

도 흐른다. 그동안에 내가 쌓았던 신뢰는 무엇이 었나? 5년이란 시간

을 가족이란 끈에 묶여 살아온 세월이 허무해졌다. 도대체 지킬께 뭐

가 남았다고 여기에 와서 이렇고 있나 자괴감마저 들었다.

한참의 적막이 흘렀다. 남자들이 잠든 모양이었다.

소리죽여 건너오더니 낯고 싸늘한 목소리로 잘못을 빌란다.

이유인즉 남편친구들이 왔을때 본배 없이굴어 남편 위신 떨어 뜨렸다

고.... 자식보내놓고 나는 그순간 손님 대접이라도 해야 했던걸까?

이미 살아갈 의미조차 잃은 나는 적선하듯 잘못했다 했다.

하지만 병원서 아이한테 했던 말 사과해 달라고 하니 ,

언제 그랬냐고, 대학교수 며느리가 시어머니 정신병자로 몰았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라고..그러면서"내가 사람이면 그랬겠냐? 천벌을 받지"

어머니가 알고 내가 알고 아이들이 듣고 하늘이 아는데 자기 입으로

저주를 퍼붓는 꼴이다. 그래놓고는 분한지 그런 자식 낳아 놓고도 뭔

말이 많으냐고....애들한테 계집애 소리 한번 안하던 양반이 .......

목소리가 높아져 남편이 오니 갑자기 톤을 바꿔 애가 그러는데 내가

정말 그러더냐고 다그쳐 물었다. '지난일인걸요.'

남편에 말에 맥이 빠졌는지 황망히 부엌으로 가 저녁준비를 서둘렀다.

평소대로라면 남편은 어머니 편을들어 나를 몰것이고 그 기세를 몰아

기를 꺽어 놓을 계산이었던 듯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까지도 남편이기보단 어머니의 아들인 남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게 베푼 호사이다.

아이의 두번째 생일을 그집에서 보내기는 싫었다.

남편에게 애원해 밖에 나와 술취해 운전을 못한다는 핑계로 밖에서 밤

을 보내고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와의 약속은 지킬 수없게 되었다. 평생을 힘들게 살아온

엄마에게 나와 같이 자식앞세운 고통을 줄수도 큰아이에게 동생잃은

슬픔에 연이어 엄마마저 잃게 할순 없었다.

결국 용기가 없어서 였지만 내가 갈수 없으니 돌려 주시라고 신께 간

곡히 기도 했다.

아이를 보내놓고 늘 병원을 찾아 헤메는 꿈만 꾸다가 어느날 신비한

꿈을 꾸었다 높고 흰 건물에 가서 아이를 찾아 업고 나오는 꿈이었다.

태몽이었다.내 수호천사가 날개를 꺽고 다시 내게로 돌아 왔다.

...

우리 아기보다 먼저 투병중이던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연락

이 끊겼다가 소식듣고 아픈 몸에 병원 까지 달려왓던 큰언니가 마지막

으로 막내가 보고 싶다고.... 갈수 없었다. 아버지 그리가실때 아이가

져 쫓아 다녀 그리 됐다고 울어머니 하는 말을 믿지는 않지만 이번많

은 가릴것 가리고 싶어 애써 외면 했다 .아이보낸지 백일째 되던날 바

다에 다녀오니 엄마가 웅크리고 울고 계셨다. 남편과 엄마만 보내고..

모질게 맘먹고 새로 산다.

종묘사에서 농약사며 같이 샀던 씨앗을 틔우고

다시 찾은 엄마의 이름으로.....

지난 3년 부모 자식 형제를 한꺼번에 잃으면서

오만하던 젊은 날의 나도 함께 묻었다.

슬프게도 더이상 사랑할 수 없게된 남편이지만

내아이가 사랑하는 아빠이므로 ......

내가 참으면 끝나는 일을 왜그리도 악 쓰고 살았었는지...

지난 삼월 다시 아이를 찾고 이제는 세상에 더 바랄것이 없다.

아직도 어디선가 기다리는 아이꿈을 꾸는 날이면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은 없지만,다시 돌아 온거라 믿고 싶다.

......

시어머니 아들낳아 모든걸 용서 한단다. 용서 받을 일도 그렇기도 원

치 않치만 자기 욕심에 갇혀 버둥대는 그녀를 더이상 증오하지 않는

다. 다만 내 아이의 몫으로 용서 또한 할수 없을 따름이다.

아직도 딸이 시집을 못가서 큰아들네 아들이 없어서 스스로 불행에

갇혀 있는 그녀를 내가 따로히 거들 까닭이 없기 때문다.

......

구정이 돌아오면 본가에 가야 하지만 나에겐 작은 불편이고 아이들에

겐 친가 이므로 한편의 연극 무대에 서듯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낼 것이

다.

오늘 난 내 아가가 가르쳐준 행복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가는 이유를 가졌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