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가 진하게 느껴질때마다 난 버릇처럼 커피를 마신다
나갈수도 뒤돌아 설수도 없는 이 엉거주춤...
커피와의 전쟁. 마치 블랙커피로 쏟아지는 졸음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때를 가끔 떠올리곤 한다
그때의 절망은 얼마나 서러운 빛이었을까...
연이어 닷새를 철야를 하고
졸음마저 잘라먹은 희미한 촛점속에서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다가
웃다가 마지막 CUT를 진행자리에 올려놓고 간단히 편지를 썼다
<며칠 바람쐬고 올께요 >
어제 가불해둔 돈을 주머니에 꾸겨넣고 지금 마악 어둠이 깔린
거리로 나왔다
청량리역까지 가면서 내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괜히 키득 키득
웃었다 그래... 떠나는 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풀리지않는 갑갑함속에 떠나는 나의 무모함을
후회하면서 또 이렇게 떠나는 것이다
기차에 올라 삼등열차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싫어 모자를 되도록
깊숙히 눌러썼다
주체할수 없게 흐르는 내 절망이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되도록
깊숙히 가리고 싶었다
사간 캔맥주를 들이키고 나니 어느새 겹겹히 둘러싼 긴장이 하나
둘 풀어지고 며칠만에 늘어지게 잤다
며칠분의 잠을 잤을까
끊긴 필림이 제자리에 돌아온것은 강릉에 거의 다 와서였다
안개속 새벽의 강릉역전을 나와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속초를 향하는...
내 어린 시절이 남아있을것 같은 고향으로...
시커먼 기름때에 찌든 물살을 가르며 갯배가 움직였다
하얀등대.
여전히 파도는 검푸렀고 칠이 벗겨진 하얀등대도 그대로 였다
방파제 사이로 내려가면서 하얗게 밀려드는 현기증을 느꼈다
발아래 우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위위에 길게 누웠다
아무런 생각도 할수가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이 행복했으므로...
그대로 정지 되었으면 싶은 시간.
날이 어둑 어둑해 지도록 그렇게 누워 있었다
이 절망의 끝은 어디에 있는건가...
무엇을 향한 갈망인지 확실히 알수는 없지만 목이 마르는 갈증이
자꾸만 울컥 울컥 가슴을 미어왔다
휘청 휘청 등대를 걸어나와 속초시내에 들어 섰다
갑자기 그가 보고 싶어졌다
눈물나게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고맙게도 그는 아직 회사에 있었다
" 여보세요. "
"........ "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 둘 불을 켜는 상점들의 불빛이 뿌연 시야속에서 흔들거렸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난데.... 그냥... 그냥... "
결국 난 그말 밖에 할수가 없었다
울음이란 놈이 왈칵 튀어나와 전화를 끊고 말았다
바보 넌 바보야.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냥 그냥이라니...
키득 키득 웃었다
슈퍼에 들려 캔맥주를 사다 문득 한구석에 놓인 양초를 보았다
하나 둘 셋... 손에 잡히는 데로 샀다
여인숙은 쾌쾌했다
주인여자의 이상한 시선을 애써 피하며 문을 잠궜다
얼룩 얼룩한 천장을 올려다 보며 나만의 공간속에서 파티를 벌리고 싶었다 주머니속에서 초들을 꺼내 불꽃을 피웠다
스무여개 되는 초들을 방바닥에 원모양으로 둥글게 세우고나니
그 흔들리는 촛불들이 현란스러웠다
형광등을 끄고 그 원속에 조그맣게 누웠다
갈아 앉고 갈아 앉아 차라리 바닥에 깔리는 가위눌림을 느끼며
밤을 잘라먹고 있었다
새벽녁 잠이 깬 광경은 굉장했다
초가 녹아내려 온방안은 한가득 촛농들이 다닥 다닥했다
아직 밖은 어둠속에 있었다
서둘러 살금 살금 기어나와 도망치듯 여인숙을 벗어 났다
주인여자의 쏟아질 욕지거리를 상상하며...
닷새 철야하고 달려간 그곳에서 난 그렇게 철없는 짓을 하고
그날도 하얀등대 방파제속에 누워 파도소리에 취해 하루를 보내고서 서울로 되돌아 왔다
절망의 서울로 목이 메이게 그리운 그가 있는 서울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