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여성 손님에게만 수건 이용요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74

무당집 옆 그 아이 (2-2)


BY 칵테일 2000-09-25

무당집 옆 그 아이 (2-2)

나는 왼손잡이다. 대부분의 것을 왼손으로 처음 배우거나 하게 된다. 특히나 어른들의 시선에서 놓여나는 놀이의 경우, 십중팔구는 거의 왼손으로 하게되는 나다.

그렇지만 왼손으로 한다고 해서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니건만, 친구들은 가끔씩 왼손잡이인 나를 놀리기도 했었다.

특히 경주는 툭하면 나를 왼손잡이라고 놀렸다. 공기놀이를 하다가 자신이 지는 경우에는 영락없이 날 놀렸는데, 처음에는 져서 그러려니 하고 듣고 있다가도 집요하게 날 놀려대는 바람에, 결국은 내가 울어야만 그 놀림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내가 울게 되면 그 아이의 쌍둥이오빠들이 다 달려와, 날 울린 경주를 야단쳐주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악의가 있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렇게 오빠에게 혼나고 나면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우는 아이였고, 그 소리에 저절로 눈물이 그쳐버린 나는 오히려 우는 경주를 달래주어야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카시아집의 그 아이가 경주네 집 앞에서 울고 있었다.
어찌나 오래도록 흐느껴우는지 내집 문 안에서 빼꼼히 밖을 내다보고 있던 내가 나가서 그 아이에게 왜 우느냐고 물었다.

경주가 자기를 심하게 놀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라고 놀렸느냐는 물음에는 끝내 대답하지 않길래, 그러면 경주는 어디 갔느냐고 하니까 자기집으로 그냥 들어가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2층 경주네로 올라갔다.
경주는 길다란 마루에 엎드려서 뭘 먹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왜 울렸느냐고 경주에게 물었고, 경주는 편드는 내가 재미있다는 듯, 심드렁하게 날 올려다만 볼 뿐이었다.

내 말에는 아무 대꾸도 없이 계속 먹어대며 또 다시 그 아이에게 비아냥거렸다.

내 예상이 맞았던 것 같다.
그 아이의 엄마가 무당집 뒤치닥거리를 하며 산다는 것.
아주 가난한 아이라는 것. 등등.
그 날의 발단은 그 아이의 옷이 무당집 딸이 입었던 옷이라는 거였다.
그 아이의 엄마가 무당집에서 얻어다 입힌 모양이었다.

나는 어떤 의협심에서라기 보다도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고 있는 경주를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와 항상 재미있게 잘 놀던 경주에게서 느끼던 편안함과 듬직함은 간 곳 없었다.
다만, 약한 이를 괴롭히는 나쁜 아이가 경주라는 생각외에는.

내가 경주에게 그런 나의 생각을 말했던 것 같다.
너같은 아이와는 다시 놀지 않겠다고 말했을테고, 도덕책에 나올 듯한 말도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언제나 경주의 모든 것을 용납하던 내가 그날은 아니었다는 사실.

아카시아꽃이 흐드러진 한적한 곳에 살고 있는 그 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은 아마도 그러한 동정심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알 수 없는 연민 따위.

그렇다고 일부러 그 아일 찾아가 친구가 되어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 어딘가에는 그 아이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보다.

결국 경주가 울었다.
그것은 내 말이 호되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늘 호의적이었던 내가, 일시적이나마 배신(?)한 것에 대해 화가나서 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나는 아카시아집 아이를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예전과 다름없이 경주랑 놀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경주의 모든 것을 다 받아주며 재미있게 놀았다.

함께 숙제를 하거나, 동네를 휘돌며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때도 언제나 떨어지지 않고 사이좋게.

그리고는 가끔씩 아카시아집 그 아이의 집켠을 올려다보며, 그 아이의 모습을 눈으로 찾으면서.

웬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나를 그 아이에게로 이끌었다.

모두들 굿하느라 왁자할때도 그 아이만은 뱅글뱅글 혼자서 외딴 곳을 찾아 혼자 놀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조용하고 외롭게만 보이던 그 아이의 모습이, 지금까지 내 기억속에 오롯이 남아있다.

그것은 그 아이가 18살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도 나에게는 아름다운 기억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문득문득 그 아이가 살던 어릴 적 아카시아집이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의붓아버지에게 겁탈을 당해 그 충격으로 목숨을 끊었다고는 하지만......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웬지 그 아이는 이 세상에 오래 머물 것 같지 않았던 느낌이 내 어린 날부터 아주 짙게 느껴져서일까.

어쩌면 그 아이는 처음부터 아주 잠깐 머물 손님으로 이 세상에 왔던 것은 아닐까.

단지 그의 의붓아버지의 탈선이 그 아이의 죽음을 잠시 더 앞당겼을 뿐.

이렇듯 최 란에 대한 내 기억은 알 수 없는 꿈을 꾸는 듯 언제나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련하게 내 어린 날의 기억속에 남아있음에야.

아마도 선명한 흑백사진같은 존재.
최 란. 그립다. 내 친구.


칵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