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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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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5)


BY 새봄 2003-06-14

올 여름은 비가 매일 내렸다.
비오는 창밖을 보며 잡스러운 생각을 많이 했다.
잡스러운 것이 어찌보면 내 우울을 부추길 수도 있지만
내 우울을 가라앉힐 수도 있는거니까.

이런저런 카드회사에서 남편을 찾는 전화가 하루에도 한두통씩 온다.
여기저기 깔아 놓은 빚이 많다는 걸 익히 알았지만
전화 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푹" 꺼지고,
초인종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인기척이 없는 듯 가만히 몸을 사리곤 했다.
빗소리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전화 소리에 가슴이 꺼지고 초인종 소리에 가슴이 저렸다.
이 몸에 있는 가슴은 튼실하고, 내 가슴은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나보다.
도마뱀 꼬리처럼...

큰 아이도 아버지의 부재를 알게 되었고
작은 아이는 말은 안하지만 아빠에 대해 물어 보지 않는 걸 보니 아는 게 분명해 진다.
큰 아이는 울면서 우린 이제 어떻게 되냐고 빚이 많아서 아빠는 어떻게 되냐고
우린 어디가서 어떻게 살아야하냐고...
큰 아이와 얼굴을 맞대고 울었다.
걱정하지 말라고,엄마가 있지 않냐고,,아빠가 진 빚은 집 팔아서 갚으면 되고,
우린 할머니 집에 가서 살면 된다고...

비참하게 비가 내린다며 창가에 앉아 있곤 했다.
창 넓은 이 집에서의 여름은 올 해가 마지막이구나 중얼거리곤 했다.
여기서 끝을 내야한다며 단호하게 가슴에 힘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밤비 소리만 주절주절 거리곤 했다.
어김없이 아침이 오면 따스한 밥을 해서
비어있는 식탁 의자 하나를 놔 두고서 아이들과 함께 반찬 시원찮은 밥을 말없이 먹곤 했다.
착한 아이들 때문에 난 이자리를 지켰을까?
모성애가 강한 친정 엄마를 닮아서 아이들을 꽤차고 있었을까?
이혼이라는 낙인을 찍고 싶지 않아서일까?
잘했다고 스스로를 인정하면서도 진작 정리를 했으면 지금쯤은 자리를 잡고 있었을거란 후회도 했다.
뭔 미련이 남아서 이런 꼴을 봐야하는지 지겹다.
아무것도 건질 수 없을 때까지 살아 온 내가 한심스럽다.
그러나....난 잘 참았다고 인정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중간하게 참다가 떠났으면 나쁜 여자로 남게 되었을게 뻔한거아닌가...
우리나라는 아직도 여자가 집을 나가거나 바람을 피거나 하면 무족건 여자가 나쁘다고 한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남자니까 하면서 말이다.
요즘 현실은 여자가 바람을 피우면 남자가 덮어 준다고 한다.
옛날엔 있을 수 없는 사건이겠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긴 바꿨나보다
하긴 천구백년도가 아닌 이천년대 아닌가.
내가 어릴적엔 이천년이 넘으면 로봇이 청소를 하고 사람들이 날아다닌다고 했는데...
사람이 날아다니진 못해도 여자가 큰소리치는 세상은 왔으니....말센가?

한쪽에서 사명 신고를 내면 한쪽에선 아이가 태어나 나만 아이를 낳은 듯 좋아서 난리가 난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이 있는 반면 어느 구석에선 욕을 하면서 헤어지는 남녀가 있다.
홍수가 나서 죽느니 사느니 하는데 어디에서는 홍수 때문에 이득을 보는 사람이 분명이 있다.
세상사는 게 말이다.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다.
뒤집으면서 뒤집히면서 속으면서 속이면서 살게 마련이다.

비요일로 시작하고 비요일로 끝나는 여름이 이별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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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둘째 형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쯔쯔쯔 혀만 차고 동서 팔자니까 살아야지 어떡하겠어 하시던 분이
이제는 동서 가고 싶은 길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참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끝내려고 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참고 또 참았더니 이제는 시집에서도 잘 가라 합니다.
제 인생을 찾으라 합니다.
행복하라 합니다.
저도 이제 그러고 싶습니다.
정말 그래도 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