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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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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장을 보다.


BY 빨강머리앤 2003-06-04

오늘은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여느때처럼, 오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부랴부랴
집에 오는길에 장날이 질펀이 벌려진 시골장에 들어섰다.
아직은 대형마트보다는 시골장이 더 활발한 이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집앞에 있는 마트보다는
일부러 장날을 기다렸다 장을 보곤 했다.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오는 수고를 자발적으로
할만큼 아직 시골장은 매력이 있었다.

예전 시골읍내의 모습을 간직한 것들이 주는 고전적인(?)느낌
보다는 현대화된 주변환경과 어딘지 어울리지 못하다는 느낌을
풍기는건 지나치게 좁은 도로 탓이 크다.
여전히 오일장은 건재하건만 그 작은 도로가 더욱 비좁을 정도로
들락 거리는 자동차 때문에 좁은 도로에 맞게 더욱 비좁은 인도는
두사람이 다니기도 불편할 정도였다.
이왕이면 현대식 건물에 맞게 도로도 개편했으면 좋았을 일이었지만
그건 내가 관여할바가 전혀 못되는걸 알기에
그와같은 불편을 감수하고 오늘 저녁엔 무슨 반찬을
올릴 것인가를 생각하며 좁은 길을 돌아 시골장을 돌아보았다.

연세가 지긋하시고 땅에서 땀과 피를 흘리신 세월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놓으신 할머니들이 조목조목 작은 바구니에 취나물이며
미나리 그리고 버섯등을 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있었다.
'애기엄마, 이 취나물 내가 직접 뜯어온 것이라 향도 좋고
맛도 좋을 것인게, 여기 한바구니만 사여.'모퉁이를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는 할머니는 웃고 계시지만 곧 해가 지려는지
하늘이 붉은 노을로 수를 놓고 있는 시각, 가져오신
나무새를 모두 팔고 가시고 싶으신 할머니는 조급함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계셨다.
'얼만데요?' '이거 한바구니에 천원만 줘.'
취나물을 샀다. 옆에 있는 철늦은 두릅도 한바구니 달래서
사오며 두릅을 데쳐 초장에 찍어 먹는걸 좋아하는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내 기분까지 덩달아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마늘쫑이 한창인가 보았다. 여기저기 야채를 파는 좌판마다
마늘쫑이 한무더기씩 풍성하게 올려져 있었다.
저걸 사다가다 멸치란 조리면 맛나겠다 싶어지지만
오늘은 감자도 호박도 사고 나물도 벌써 두봉지가 손에 달렸는지라
다음으로 미루고 만다. 두손은 이미 장을 본 물건으로 가득차
더이상 무얼 사기에 벅찬데 나는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
장터 끄트머리쯤으로 바쁘게 발길을 옮겼다.

오늘도 있을까나..
드디어 내가 찾고자 한 코너가 눈에 띄자
반가움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꽃파는 아저씨'가 오늘도
한쪽 구석에 좌판을 벌리고 있었다. 좌판이라기엔
너무 왜소한 작은 라이커를 개조한 것이었지만 그위엔
오늘도 늦은 시각까지 팔리지 못한 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장이 거의 끝나갈 시간에 그곳에 가면 아저씨는
한다발에 천원떨이를 하고 계시곤 한다.
오늘도 예외없이 한다발에 천원이란다.

지난주엔 노란장미가 너무 예뻐서 두다발을 사서
일주일동안 노란장미를 들여다 보며 행복했었다.

오늘은 노란장미 대신 주황색 원추리같은 백합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그냥 하얀 색이면 얼른 손이 갔을 텐데
조금씩 시들어 있는 주황색백합은 어쩐지 사고 싶은 생각이
안들게 했다. 그래서 철이른 소국을 만지작하는데
그마저도 오늘은 많이 상해 있어서 아무리 싼가격 이라지만
그걸 사들고 가서 금방 버리게 될것 같아 망설이고 있노라니
아저씬 맘에 들면 오백원씩에 줄테니 가져가라셨다.

다행히 국화꽃 무더기 옆에 장미가 몇다발 남아 있어서
그중 괜찮은 흑장미를 두다발 골랐다.
아저씬 흔쾌히 좀전에 만지작 거렸던 노란국화 한다발을 덤으로
끼어서 장미 두다발과 함께 건네 주셨다.

낑낑대며 집으로 돌아서
무엇보다 먼저 장미랑 국화를 화병에 꽂았다.
거실엔 붉다 못해 검붉은 빛을 띠고 있는 장미화병을,
베란다 서랍장위엔 노란국화화병을 갖다 두었다.
붉고 노란 꽃이 담긴 화병을 바라보며 잠시
오늘의 피로를 잊는다. 아니, 때아닌 꽃들의 잔치에
난 행복에 겨워 어쩔줄 모르겠다.
그래서 이 겨운 행복을 함께하고 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장미와 국화꽃의 향기를 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