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래왔듯이 오늘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엄마 보다 한 10분쯤 먼저 나간
큰딸아이가 계단옆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때까지도 학원차가 오질 않아서 동생은 마냥 길가에서
기다리고 섰고 저는 아마 애가 타서 기다리다가 올라온
모양이었다.
아이는 시계도 차지 않고 있었는데 제 나름대로의
짐작으로도 너무 오래 차가 오질 않는다고 생각했나 보다.
큰 아이는 걸어서 가기엔 좀 먼거리에 학교가 있어서
학원에 가는 동생과 함께 그 차로 학교를 간다.
시간을 보니 내가 학교까지 태워다 주자니 직장에 늦을 것
같았고, 아이를 마냥 기다리라고 하자니 아이가 학교에
지각할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니 고객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자동 녹음방송만 나온다.
어찌해야 하나...... 난감한 마음에 우선 아이의 학교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작은아이 혼자 세워두고 가기도 그래서 일단 함께
태워서 학교로 향했다.
큰 아이는 학교에 늦겠다고...... 신호가 왜 이리 긴거냐고
조바심을 쳐 댄다.
가까스로 큰아이에게 지각을 면하게 해 주고 나서 보니
뒷 좌석에 타고 있는 작은아이를 또 어찌해야 하나......
그곳 학원에는 아마 토요일에는 오는 아이들이 거의 없나보다.
토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휴가를 낼수도 없는 처지이고 보니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동안 아이들을 부탁해 오고 있던 차였다.
순간적으로 많이 화가 났다.
사람이 살다보면 우연찮게 사정이 생길수도 있는 거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자고 어떤 시간 약속을 정하였다면
미리 전화라도 한 통 주는 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예절이
아닐까?
그래야 아침에 출근하는 엄마가 서둘러 나와서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갈 수 있지 않을런지.....
가뜩이나 출근하는 길목에 있는 곳도 아닌 그 곳까지 일부러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와야하는데 정말 너무도 황당했다.
원장님 집으로 겨우 통화가 되어 9시를 15분여 남겨두고
다시 아파트로 와서 작은아이를 내려줬다.
그 때서야 와 있는 차를 보고 나니 나는 무어라 할말이
나오질 않는다.
시간도 없고 그래서 내쳐 출근을 서둘렀다.
사무실에 전화를 하고......
본의 아니게 나 까지 지각을 했다.
그렇게 난리를 치르며 출근을 하였는데 아직까지
원장이란 사람은 전화한통 할 지 모른다.
아이들을 더 이상 그곳에 맡겨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내 머리속은 온통 복잡하기만 하다.
다른일도 아니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 그런 일은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내가 아침부터 전화를 하게 되면 어쩐지 많이 이성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어 보여서 아직껏 나는 전화를 미루고 있다.
오후까지는 기다려 보려 한다.
어떤 사정이 생긴것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고
무성의함 내지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이
나의 화를 돋구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나는 정말 한결같이 마음으로 고마워하며
또 내가 할 수 있는 인사는 하고 사는 사람인데......
세상이 모두 내 맘 같지는 않은 건지
아침 내내 마음이 무겁다.
두번다시 그런일이 없게 해 달라고 아쉬운 입장인 내가
사정을 해야겠지마는 그래도 왠지 마음이 그렇다.
아이들을 맡기고 있는 엄마는 아이들이 걸려서
하고 싶은 말도 다 못하고 그리 살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내 아이들을 그 학원에 계속 보내야 하는 건지는
신중히 생각해 보련다.
아주 작은일에서 조차 그렇게 무성의한 사람에게 어떤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의탁할 수 있을런지 참 걱정이 된다.
한번 기다려 보려 한다.
전화 한통이라도 해서 사과를 할 줄 아는 작은 배려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어느새 쉽게 풀려 버릴 사람이지만
이런 경우에도 내 쪽에서 먼저 전화해서 일방적으로
사정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내가 맘 놓고 믿고 맡긴 아이들에 대한 배려.....
그런 것들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건가.
나는 그간 사람과 사람사이의 약속은 믿음 하나면 충분히
지켜질 수 있는 거라 생각하며 살았다.
오늘일 이후로 난 누구와의 약속에 대하여 정말 얼마만큼
배려하며 내 나름대로 믿음을 심어주며 살았는가
잘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면서
"그 사람 찰 틀림없는 사람이야"
그런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아주 사소하다는 이유로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적은 없었는지...... 내 편의 대로 이렇게 저렇게
약속을 바꾸고 산 적은 없었는지.....
오늘 이후의 나는 이런 생각을 좀더 많이 하며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아침부터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를 하게 되어
괜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된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약속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런 글을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