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소 가는 길에 키가 큰 미루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습니다.
잔가지 엉성하게 내어놓고 겨울 바람을 맞고 서있던 가지에서
후두둑 하고 바람에 놀란 눈 무더기가 떡가루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아무도 변소에 다녀간 식구들이 없었는지
마루에서 변소에 이르는 길은 어젯밤 뿌려놓은 눈이 소복히
쌓여 눈 속에 묻혀있는채 였습니다.
발목까지 빠지는 그길을 한 발자욱씩 떼어 놓을때마다
발바닥 밑으로 눈가루가 소물거리며 한줌씩 들어오고
내 발밑에서 사정없이 뭉그러지던 하얀 눈은 뽀드득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땅으로 꺼져들어갔습니다.
그 소리가 재미있어 마당을 이리저리 뛰다보니
변소가고 싶던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빨갛게 언손으로 눈사람 굴리기에 신명이 났습니다.
감기 걸릴라 걱정하는 엄마는 그 염려의 표현대신
"눈을 다져 놓으면 어떻게 쓸어내느냐"며 호통을
치셨습니다.그런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코밑이 빨갛게
짓무르도록 콧물이 흘렀고 엄마가 벽장에서 꺼내
주시는 아스피린 한 알을 꿀꺽 잘 삼킨 댓가로
원기소도 한 알 얻어먹는 수지를 맞았습니다.
이제 변소앞의 미루나무는 잘리워 나갔고
발목까지 빠지는 눈도 더 이상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 쉽게 녹아버리는 탓에 첫 발자욱을 내며 걷던
새벽녘의 그 상쾌함도 더 이상 느낄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내 마음이 메말라 가고 있음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눈이 내리면 눈사람 만들 생각에
부풀던 예전과 달리 운전하기 곤란해 어떡하지
란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게산적인 내 마음 말입니다.
첫 발자욱을 조심스레 찍던 그 설레임으로
처음 글을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