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집을 나간지 3주째.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별거 생활이 길어지리라는 막연한 예감을 갖는다.
우린 전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 사람도 나도...
남편은 살면서 나한테 많이 지쳐 했고 나 또한 지금 너무 많이 남편에게 지쳐 있다.
둘 사이 골이 이렇게 깊이 패인 데에는 그도 나도 책임이 있다는 걸 우린 서로 잘 알고 있다.
이번에 남편에게 그동안 사귄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아마 난 남편에게 또 집에 제발 들어오라고 내가 잘 해 보려 노력하겠다며사정했으리라.
그럼 남편은 집에 들어왔을 것이고 난 또 무언가를 포기하며 그 사람에게 길들여지는 순한 양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 여자 아이 (정말 어린 애였다. 여대생이라는 사실이 더 기가 막힐 따름이다) 문제가 우연찮게 터지지 않았다면 우린 잘 지내고 있었으리라.
한 때 좋아했다. 너에게 미안한 사실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다 정리가 되었고 가끔 술 마시는 친구로 그냥 지낸다는 말을 하며 그 사람이 덮어두자고 했을 때 그냥 지나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도저히 감정 제어가 안 되었나 보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아버린 것에... 그리고 이젠 그 여자애와 술도 마시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에...
그러면서 자기가 먼저 화를 내며 집을 나갔다.
기가 막힐 뿐이었다.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전화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여자애에게 전화했다.
그 여자애 왈
-왜 남편분을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저도 많이 힘들었어요. 울기도 많이 울고...이혼하지 마세요. .....
-너도 애들 데리고 한번 살아봐. 내가 애들 다 너한테 줄게.... 그리고 너가 우리 남편을 이해한다고? ... 너도 살아봐라... 그래 넌 결혼해서 잘 살거다. 남자의 마음을 잘도 이해하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전화하면서도 비참했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비참했다.
전화하지 말았어야했다.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안다면 지깟것이 무얼 안다고? 젊은 애가 할 짓이 없어 유부남을 만나? 어쩜 우리 사이에 대해 그리 잘 알고 있을까? 남편의 집안에 대해서도? 그리고 남편에 대해서도...
아~ 이 남자 나한테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어떻게...
나 혼자 애들 데리고 발 동동 구르며 살아가고 있을 때 이 남자는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남편이 그동안 잘 해 준 모든 것들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믿음도...모두 모두...
휴~
처음 며칠간은 먹지도 못하겠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말 어린 아이들이 내 손길만을 기다리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밥을 먹었다.
시어머니께도 얘기하고 친정엄마에게도 얘기하고 난 도저히 내 문제를 담고 있을 수가 없어 그렇게 얘기했다.
그리고 이 컴에 매달려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내고...
익명성이라는 잇점 때문에 쉽게 털어내는 것 같다.
남편도 이참에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아무 생각없이 일에 전념하고 있으리라.
그 사람은 그동안 잠시 떨어져 살자고 나에게 쭉 얘기해 왔었다.
아마 지금 그 사람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으리라.
나와 남편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서로 용서가 안 되면 못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 사람은 나와 근본적으로 안 맞는다며 고민해 왔었나 보다.
아니 나에게도 그런 얘기를 했었다.
내가 그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고 듣고 싶어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하지만 어디 부부가 다 맞아서 사는 걸까?
살면서 맞추는 거지. 서로.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다르다.
자기는 그 안 맞는 부분들이 매우 힘들고 만약 그게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헤어지는 게 차라리 낫다라고...
그 말도 맞을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난 매우 독립적이고 나의 권리를 찾는 사람이라 뭐든지 일단 그 사람을 따르고 봐야 하는 부분들이 힘들다.
그래도 그런 부분도 고치려고 나름대로 성질 죽여가며 많이 노력했는데 나의 성격도 금방 바뀌지 않은지라 어느 순간 부딪힌다.
그러면 그 사람 못 참고 집을 나가버린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집은 나가지 말고 집안에서 해결하자고 했더니 같이 있으면 때릴 거 같아서 나간다고 했다.
그랬다. 우린 그렇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