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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31) 강변역


BY 영광댁 2001-08-29


강변역

순환열차가 강변역을 지나간다.
강에 닿는 햇빛이 가을색을 머금었고
내 눈빛은 먼 시야에 닿았는데
마음은 혼자 물가로 나가 물수재비를 뜨고 서 있다.

한사코 괜찮다 마다하는 H님의 짐보따리를 들고 동행하는 길.
어디만큼 가시는가... 어느 집일까. 저 짐을 가져다 줘야 하는 집에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니다. 빛나는 나이였을때는 감히 꿈을 꿔보지도 않았던
짐보따리를, 한사코 보이기 싶지 않은 나에게 들켜 버린 H님의 마음에 물빛이 출렁이는가.
창가만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
세월이 흘러가는데, 모른체 지나 갈 수 있는 일을 나는 부러 따라나서고 있었다.

강변 저쪽으로 흘러가는 한 편의 기억은 또 눈부시다.
우리 6남매를 홀로 키우시던 젊은 엄마는 산을 넘고 들을 넘고 논둑을 건너서
먼 마을로 먼 마을로 장사를 하러 나가셨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먹거리들을 사고서 들에서 나온 곡식들로 값을 지불했는데
집집을 돌때마다 쌓이는 곡식들을 어쩌지 못해 한집에 모아두고
어머니는 가끔 한번씩 말잘듣는 나를 불러 곡식들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낯익은 어머니의 길을 낯설게 가보는 나.
가끔 부끄럽고 가끔 사람의 도리가 아니게 엄마가 원망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던
내 어린날이 강물에 출렁인다. 짧은 원망을 지워버리고 고생하는엄마가 한없이 고마워서
서러웠던 날들을 돌아볼때면 거기 착하고 순한 내가 늘 서있곤 하는 것이였으므로...
오늘 문득 이 동행은 지금은 내게 없으나 그전에 그전전 ... 혹은 그 전전전에
있었던 길을 오늘 다시 가보는 길이기도 한 건데..

일이 있어서 행복하고 건강하니 행복하고 내 손으로 가족을 해결할 수 있으니
지금 좋은 거 아니예요. 그렇게 나보다 스무살이나 더 많은 h님을 달래가면서
가는 길인데 ... 날 돌아보며 고맙다시는 말씀에 고마운게 다 눈멀어 어디갔나...
지가 가고싶어 가는건데.. 물흘리듯 무심하게 한소리를 하였다.

성내역 짐을 내려야하는 곳이다. H님은 주섬주섬 갈길을 서두르며 날더러
곧바로 가거라시는데 ... 나 모가지를 외로 꼬며 눈꼬리를 세우자,
살쇄기 같다는 말을 어쩌면 어린 날 어머니가 나에게 하셨던 소리를 하신다.
가끔 어머니는 내게 냉차다고 살쇄기 같다셨지만 나하고 제일 친하게 지냈다.
지금은 어머니랑 나는 동무같다. H님도 오늘은 내 동무다.
출구로 먼저 나가시고 양손으로 들어야 들어지는 짐을 게이트로 내보내는 나.
더 이상 따라나서는 것은 그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므로 나 돌아서고
빨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고 오른쪽 모퉁이로 서둘러 가셨다.
가보았자 어디까지 가게... 계단을 올라 그분이 가신 오른쪽 돌아간 쪽 창문으로
내달려 보니 창턱은 내 가슴께에 닿았다. 가방과 신문을 바닥에 내려두고 양손에
힘을 주고 훌쩍 굴러서 창턱에 뱃가죽을 대고 창문을 올라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바보 h님 2층에서 내가 내려다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양손에 들었던 짐을 길가에 내려두고 망연히 서 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지나가고 나 2층 창턱에 뱃가죽을 대고 망연히 서 있는h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을로 가는 햇살만 무심하게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20010829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