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강력범죄와 아동 성범죄자들의 처벌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69

개들의 전성시대


BY 남풍 2003-04-14

유난히 개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할머니가 친구네서 갓 젖을 뗀 점박이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엄마, 얘 이름 다래라고 할래요."

다래? 키위?
하긴, 큰애 이름이 미래. 작은 애가 나래니 내가 셋째 딸을
낳았어도 그런 이름이 나왔을 법하다.

엄마를 떼어놓고 왔어도, 다래는 저만한 아이들이 있는 집이
싫지않은지, 꼬마들을 따라다니며 잘 논다.

껴안고 비비고, 손에서 손으로,
평소에도 강아지 인형을 안고 자던
아이들은 다래랑 노느라, 문 앞에서 기다리는 누렁이는
본체만체다.

조금 열린 문 틈으로 코를 내밀고 아이들을 기다리며 누워 있는
누렁이가 안쓰러워
'누렁아'하고 부르자 제 이름에 귀를 쫑긋거린다.
누렁이는 출입항 신고소에 전경들과 같이 지내는 경찰견이다.
살고 있는 곳이 경찰복 입은 사람들이 득실대는 곳이라,
경찰견이라는 거고,
하는 짓은 도무지 경찰견으로서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짖궂은 전경대원들이 밤샘근무에 심심한지,
분장을 해놓아 아침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어떤 날은 온 몸에 큐피트 화살을 맞은 하트가 그려져 있는가하면,
'왕'이라 쓰여진 이마를 문 안으로 들이미는 날도 있다.
누렁이란 이름은 그 색이 누렇다고 아이들이 부르는 이름이고,
전경대원들이 부르는 이름은 '무수리'다.
무수리라기에 암놈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그럼 '내시'라 하던지.

옆집 철공소 언니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오자, 누렁이는 입맛을
다시며 그 발 옆에 가서 앉는다.
누렁이는 나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하는데,발 앞에 커피를 부어 주면, 깨끗하게 핥아먹고는 빈 종이컵까지 부지런히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빨아먹는다.
그러나, 내가 설탕 커피를 좋아하는 반면,
이녀석은 밀크커피 취향이라, 내가 주는 커피는 안 먹는다.

커피 좋아하는 누렁이가 그래도 참고 있는 것은,
그 언니 옆에 '폴'이라는 개가 있기 때문이다.

'폴'은 십일년간을 '일수계'를 하는 주인의 자전거를 쫓아 다닌
열한해를 산, 점박이 할머니 개다.
.
모자를 눌러쓰고 돈가방을 멘 언니의 자전거 뒤에는,
반드시 폴이 뒤따른다.
이제 늙어서 털도 많이 빠지고 이도 많이 썩었지만,
폴은 이 언니의 보디가드다.

우리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또 다른 개는 횟집에서 키우는
'망치'가 있다.
개에 대한 지식이 없어 종류는 잘 모르겠지만, 족보는 있는 개 같다,
손님들이 남긴 꽁치구이를 주로 먹는 망치얼굴은
검은 색과 회색이 섞인 털이 길고 덥수룩하다.

망치네 옆집은 '달수'네 집이다.
하얀 털이 복실한 달수는 주로 묶여있지만, 하루에 한번은
나와 천하장사 소시지를 사먹고 간다.
달수라는 이름이 너무 친근하여, 우리는 '달자'라 하자고
아이들에게 말했더니, 고개를 젓는다.
오달자? 너무 좋은데.

동네 개들 중에 그래도 가장 '개취급을 당하지 않는 것은
옆집의 애완견 '아롱이'이고, 그 딸 '초롱이'도 엄마를 못 따라간다.
딸하나 아들 하나 둔 아롱이네 집에선 이 둘이 완전한
가족의 일부가 되었다.
'아롱이'가 누런 윤기나는 털을 ? 세우고 고개를 들으면,
귀족부인같다.

아, 우리 동네를 주름 잡는 개 중 또 한마리가 더 있다.
'샨'이라는 강아지인데, 오늘 새벽 온 동네 사람들의 잠을 깨웠다.
그 소리의 우렁참이 태어난지 석달된 강아지라 하기엔 너무
크다했더니, 아닌게 아니라 몸집도 동네 개들 중 가장 크다.

"야!"
남편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뒤를 돌아보니, 다래가 카펫에 쉬~를 했다.
에고~
이제 겨우 애들이 대소변 가린다 했더니,
이녀석 배변 훈련은 어찌 시킬고?

그나저나 우리 동네 개 '누렁이' '폴' '망치' '달수' '샨' '다래'
다 모아 상견례라도 해야 할까보다.

그러면 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