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어 잠이 오질 않아 책상에 앉았다.
이것저것 좀 적다가 책꽂이의 아름이 일기장이 눈에 띄어 꺼내 보았다.
미숫가루. 갑자기 가슴이 쏴아아 파도를 쳤다.
학교에서 미숫가루를 부모님께 타드리고 그 느낌을 일기에 적어오라고 숙제를 냈었다.
집에 오자마자 내내 그 숙제 얘기였다.
(아름인 숙제를 해결할 때까진 계속 따라다니며 되뇌이는 성질이 있다.)
저녁 준비에 바빠 나중에 하라 그러고는 저녁을 먹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냉장고에서 미숫가루와 물통을 꺼내 타다가 그만 미숫가루를 통째로 엎어버렸다.
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니 또 무슨 사고 치는데? 빨랑 니 방에 들어가 자."
하는 아빠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남편은 내가 아이들 야단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야단을 친다.
겁 많은 아이는 제대로 설명할 엄두도 못 내고 달려들어간다.
숙제를 하려던 것인 줄 아는 나는 야단 칠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남편을 야단칠 수도 없었다.
그도 모르고 한 일이기에 어정쩡하게 가만 있다가 한참이 지난 후, 그에게 말을 해주었다.
그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이 없다.
칭찬 받고 싶어한 일이었을 건데 마음의 상처가 되었겠구나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결국 미숫가루를 먹지 못하였었다.
다음 날 숙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잊어버렸었다. 근데 저렇게 써 놓은 것이다.
아름인 저런 그림을 그리며 미숫가루 타기를 시도했을 건데 일이 그렇게 되고 말았으니
이제 여덟 살인데 사실대로 안 쓰고 저렇게 꾸며댔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아름아, 오늘은 엄마, 아빠가 정말 맛있게 먹어줄게. 다시 한 번 해 봐."